알아차림과 마음새김 부터 이야기하는 이유.

무턱대고 수행이라 하면, 도구가 없습니다. 수행은 초반에는 반드시 도구가 필요합니다. 어떤 어떤 길로 가야 안전하고 확실하다는 도구가 있어야 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도구는 알아차림과 마음새김입니다.

알아차림은 사띠(Sati)라 하고, 마음챙김은 삼바짜나(sampajanna) 라고 보통들 이야기 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띠를 삼바짜나와 다 포함해서 이야기하는 분도 있는 듯합니다만 엄밀하게 그 둘은 다릅니다. 두번째 장에서 자세히 설명하기로 합니다.

사띠(알아차림,마음새김)과 삼바짜나(마음챙김)을 설명하기 이전에,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의 중요성은 너무나 큽니다. 이 두가지가  없으면 수행이 아예 출발이 안됩니다.

그러므로 정확히 알아두고, 확실히 자기 것으로 만들기 바랍니다.

관련하여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래 링크로 참조해보십시오.

알아차림과 마음새김의 일반적인 의미

참조 : https://blog.daum.net/woonsu/671

마음은 여러가지 기능을 하지만 기본적으로 알아차리고, 스스로 가다듬는 기능이 가장 기본적입니다. 알아차리는 것이 사띠이고 가다듬는 것은 삼바짜나입니다. 아래의 글은 저의 견해일 수도 있지만 거의 정확하다 봅니다.

사띠(Sati) 부터 봅시다.

사띠는 마음챙김, 마음새김, 念 등의 뜻으로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혼동이 되어서 이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 잘 모를 정도입니다.

저는 사띠를 자신의 마음이 뭔가 대상을 삼고 있는 것을 느끼고 인식하는 것으로 봄이 정확하다는 의견입니다. 사띠를 방해하는 것은 번뇌이겠습니다만, 잡념으로도 잘 이야기 합니다. 현재의 마음에 집중하면서 순수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사띠입니다. 마음이란 다른 대상으로 왔다갓다 할 수도 있는 것이므로,  다른 대상에 마음이 왔다갓다 하더라도 분명하게 다른 대상에 왔다갓다하는 자신의 마음 상태를 느끼고 인식하는 것을 사띠라고 합니다. 경전에서는 ‘감관의 문을 지키는 문지기’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육근(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마음)을 통한 감관에 의한 현상들에 대해 기민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상태를 잊지않고 기억하려는 염念 또는 불망(不忘) 행위입니다.

사띠가 방해되면, 자신의 마음상태를 인식하지 못하므로, 마음이 한참을 방황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 잡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삼바짜나(Sampajañña)는 알아차림에 의해 ‘ 현재의 상태로 마음을 돌리는 것 ’으로서,  마음챙김이라고 하며, 이어서 현재로 돌린 마음을 유지하는 마음의 작용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행위를 ‘ 되돌린 마음을 일정하게 유지ㆍ지속하는 것 ’ 으로 표현하고 이를 마음새김이라 한다. 그러므로 삼바짜나는 마음챙김과 마음새김이 두가지가 있는 것 입니다.

이렇게 삼바짜나가 수행의 노력으로 수없이 이루어지면, 단순히 번뇌에 의해 마음이 휘둘리는 것을 인식하는 단계를 넘어서서 수행이 진도가 나가게 되어, 확고한 알아차림이 형성되게 되고 결국 평온한 마음이 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사띠와 삼바짜나는 위빠사나 통찰을 이끄는 양 날개의 구실을 합니다.

아래의 설명도 참조 해보십이오.

사띠(sati) : √smṛ(기억하다)에서 파생된 여성명사이다. PED에서 ‘memory, recognition, consciousness; intentness of mind, wakefulness of mind, mindfulness, alertness, lucidity of mind, self-possession, conscience, self-consciousness.’라고 설명되듯이, 그 1차적인 의미는 ‘기억(記憶), 억념(憶念), 유념(留念)’이고, 2차적인 의미는 ‘깨어있는 마음, 알아차림, 마음챙김, 각성, 명료한 마음, 침착함, 자각, 의식’ 등이다. 그래서 ‘알아차림’, ‘마음챙김’, ‘새김’ 등으로 번역하고 있다. 대상에 깊이 들어가고 대상을 파지하고 대상에 확립하고 그래서 마음을 보호하는 것으로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가능하게 하는 선한 마음의 작용이다. 그리고 다섯 가지 기능(五根, pañca-indriya)과 다섯 가지 능력(五力, pañca-bala) 중의 하나이며, 깨달음의 일곱 가지 요소(七覺支, bojjhaṅga)중의 하나이다. 또한 넓은 의미로는 선한 과보의 마음(kusala-vipāka-citta)과 아름다운 과보의 마음(sobhana-vipāka-citta)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마음의 작용(cetasika)들 가운데 하나이다. 중국에서는 염(念)이나 억념(憶念)으로 번역되었고 영어권에서는 보통 mindfulness라고 한다.

구주심 수행에서의 알아차림과 마음새김

구주심(->바로가기)에서 안주심에서 식주심까지 갈때 수행의 바탕에 알아차림과 마음새김이 항상 함께 합니다. 수행의 대상에 집중하려고 노력하는 염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마음새김이고, 수행의 대상에서 벗어나 마음이 가라앉거나 마음이 심하게 동요하는 것을 느끼는 것을 아는 것이 알아차림입니다.

삼매 수련에서의 알아차림과 마음새김

선정과 지혜를 모두 닦는 법 이란 문서에서도 알아차림과 마음새김이 계속 기능을 합니다. 선정까지 들고가는 수행의 바퀴가 되는 것이니 알아차림과 마음새김을 잘 알아둡시다.

지운스님의 사띠와 삼바짜나에 대한 설명

사띠의 확립을 사티파타나라고 한다. 사띠부터 시작해서 삼바짜나에 이르는 것을 사띠의 확립(사티파타나)라고 한다. 이러한 것이 수행이다.

사띠의 확립이 있어야, 평정이 나오고 선정에 들 수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처음에는 사띠는 부드러운 것, 딱딱한 것 이러한 식으로 대상을 알아차리다가 자꾸 수행이 되면,

찰라삼매가 생겨서, 마음의 눈이 생겨서, 모든 현상들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공통점을 알게된다. 이렇게 되면 파자나띠라고 하여 ‘꿰뚫어 안다’라는 말을 쓴다.

좀더 지나면, 삼파자나티가 생기는데, 무상하다는 지혜를 얻게 된다. 소유할 수 없고 변화하는 대상들에 대해 초연하게 된다. 무아의 지혜도 온다. 이렇게 윤리적인 것이 생기고, 이제 도의 길을 가게되는 등불을 얻게 되고, 이렇게 하면 나쁜 길이다 , 이렇게 하면 좋은 길이다라는 판단이 생기고 , 좋은 길로 가게 된다.

그렇다면 마음이 양심적이나 자비롭거나 마음이 좁지도 않고 등등 좋은 마음들은 도구가 아닌가요?

도구 맞습니다.

양심적이거나 자비롭거나 마음이 넓고 통찰력도 좋고 하는 가치들을 탄생하게 하려면, 일단 마음이 마음의 대상에 탁붙을때 마음이 일어나고 대상에 마음이 붙어있다는 것을 알아야 일어나겠죠?

마음이 일어난 것을 모른다면 자비롭거나 통찰력을 발휘할 여력도 없겠죠?

마음이 일어난 것과 대상을 기본적으로 알아야 뭐가 되겟죠?

자동차가 달릴려면 아무리 껍데기나 발통이 좋아도, 엔진이 있어야죠?

그 엔진이 바로 사띠파타나입니다!

광할한 마음이나 정묘한 마음 통찰력 양심등등은 나중에 고결한 마음부수라고 해서 설명이 나옵니다~ 기대하세요.~ 그리고 그곳에는 심오한 진리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마치 꽃을 피우는데, 예쁜 꽃이 되느냐 추한 꽃이 되느냐 꽃이 피다가 마느냐 등등의 아주 복잡한 인연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할 말은 많지만 생략합니다. 다만, 고결한 문제에 대해서 잘 모르는 상태에서 뭐가 어떠니 저떠니 하는 이야기는 본인에게 매우 좋지 않습니다. 견해를 넘어서 선입견이 되어 악덕이 되는 수가 있는데, 실제로 그런 경우 많습니다. 그냥 생각끊고 배우는게 낫다는게 제 의견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