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말씀에,
부처님의 삼마제(三摩提)를 닦아서 증득하려면, 이 근본 원인이 되는 원래의 어지러운 생각에, 세 가지 차례로 닦는 방편[三漸次]을 세워야만 비로소 없앨 수 있느니라. 그릇 속에서 독한 꿀을 제거하려면 끓는 물과 재 섞인 향료로 그릇을 씻어내야만 감로(甘露)를 담을 수 있는 것과 같다.
세 가지 점차(漸次)란 무엇이겠느냐. 첫째는 수습(修習)으로서 그 돕는 원인을 제거하는 행이고, 둘째는 진실한 수행으로서 근본 성품[正性]을 뽑아내는 행이며, 셋째는 증진하는 법으로서 현재의 업을 어기는 행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첫번째 수행의 목표는 어지러운 생각부터 다스린다가 되겠습니다.
그 방법으로 위 부처님 말씀을 보면 세가지를 하라 했습니다.
- 어지러운 생각을 돕는 원인을 제거
- 진실한 수행으로 근본성품을 뽑아낸다.
- 성품을 증진하여 현재의 업을 어긴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 어지러운 생각을 돕는 원인으로서 오신채를 끊어야 함.
매운 채소를 먹는 세상 사람이 비록 12부경(部經)을 잘 설할지라도, 하늘과 신선은 그 더러운 냄새를 싫어하여 다 버리고 멀리 떠나느니라. 또 매운 채소를 먹을 때는 굶주린 귀신[餓鬼]들이 그 입술을 핥음으로, 항상 귀신들과 더불어 사는 격이니, 복덕(福德)이 날로 소멸하여 영원히 이익이 없느니라.또 이 매운 채소를 먹는 사람이 삼마지(三摩地)를 닦을지라도, 보살과 하늘과 신선과 시방의 좋은 신들은 와서 수호하지 않으니, 힘센 마왕(魔王)이 그 방편을 얻고 부처님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면서 금계(禁戒)를 비방하여 헐고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婬怒癡]을 찬양하느니라. 이러한 사람은 죽은 뒤에 스스로 마왕의 귄속(眷屬)이 되었다가, 마의 복을 다 받고 나면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느니라.
먹는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너무나 쉽게 오신채를 극복할 수 있겠지만, 재가자이고 가족이 있다면 곤란한 문제로 보입니다. 가급적 나물반찬 같이 해서 나물로 먹으면 될 듯 합니다. 오신채에 대해 여러가지 말들이 많고 논란도 있고 풍습도 제각각이죠. 저의 주관적인 관점에서 먹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어떻게 먹는 것을 가리는가의 문제에 대해 이미 저도 뽑아낸 결론이 있지만, 생략합니다. 당신의 사띠가 삼바짜나 레벨까지 올라가면서 갈수록 예리해지고 광대해지면, 음식이 수행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고 자동적으로 음식의 종류와 양을 가리게 됩니다. 심지어 삼바짜나의 강도를 올리는데 음식의 도움이 굉장히 강력한 것까지 알게됩니다. 저의 경우도 음식을 얼마냐 가리냐에따라 들어오는 정신적 에너지량이 어마어마하게 차이 나더군요. 얼마나 중요하면 부처님이 세가지중 하나라고 따로 말씀하시겠습니까? 경안의 효과와 더불어서 공부하면서 예민하게 깨어있어보십시요. 자기 음식이 뭔지 자동으로 알게 됩니다.
- 진실한 수행으로서 근본성품을 뽑아냄
무엇을 근본 성품[正性]이라고 하겠느냐. 아난아, 만일 중생이 삼마지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먼저 청정한 계율을 엄하게 지키면서, 영원히 음욕심(婬欲心)을 끊고 술과 고기를 먹지 않아야 하며, 음식을 불로 잘 익혀 조리해서 먹어야 하고, 날것으로 먹지 않아야 한다.
아난아, 수행자가 음욕과 살생을 끊지 않고 삼계(三界)를 뛰어넘으려는 것은 올바른 생각이 아니니, 마땅히 음욕을 잘 살펴서 독사처럼 여기고 원수처럼 보아야 한다. 먼저 성문(聲聞)의 4기(棄;波羅夷)와 8기(棄)를 잘 지켜서, 몸을 단속하여 흔들리지 않게 하고, 뒤에 보살의 청정한 율의(律儀)를 행하여 마음을 단속해서 일어나지 않게 하여라. 금계(禁戒)를 성취하면, 세상에 서로 태어나고 서로 죽이는 업이 영원히 없어지며, 도둑질과 겁탈을 행하지 않으면, 서로 허물을 짊어질 일이 없고, 세간에서 묵은 빚을 갚을 일도 없느니라.
이와 같이 청정한 사람이 삼마지를 닦으면, 부모에게 받은 육신으로 천안통(天眼通)을 구하지 않고도, 자연히 시방세계를 관찰하게 되며, 부처님을 뵙고 법을 듣게 되며, 친히 거룩한 뜻을 받들어 큰 신통을 얻고, 시방세계를 마음대로 유행하며 지난 세상의 일[宿命]이 청정하니, 어려운 일이 없느니라.
그 다음으로 해야할 것을 정리해보면 가장 먼저 청정을 성취하는 것이며, 술먹기, 고기먹기, 살생,도둑질,음행을 하지않고 보살의 청정한 율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첫 단어는 청정 입니다. 청정은 정직, 진솔, 진실함과 가깝다고 보입니다. 청정을 설명할 때 7청정도 이야기 합니다만, 이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냥 봐도 청정한지 아닌지 알고 있고, 자신에게 의도적으로 적용하지 않아서 청정한지 모를 뿐이지 사실은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자기 마음속이 폭탄인데도 멍청하게 휘둘리는 것이 보통 사람들입니다. 어느 정도까지 갈 청정을 뽑을 수 있을지 스스로 가보면 알게 됩니다.
부처님은 근본성품을 뽑아낸다 하셨습니다. 정직, 진솔, 진실함의 투명하고 고요함속에서 근본성품이 나오는 원리입니다. 무었이 정직함이고 무엇이 진솔함이며 무엇이 투명함인가에대해 일반적인 상식으로 봐도 됩니다.
하지만 시시각각 접하는 상황속에서 묘하게 흔들리는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흔들림을 막아주고 견고하게 청정을 들고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여기서 꼭 필요한 공부가 반야입니다. 지금 이 경전의 부처님 말씀에는 없는데, 제가 해본바에 의하면 정말 어려운 상황들이 옵니다. 반야바라밀에 대해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를 공부하면서 정직,진솔,진실,진정의 골수를 얻게되는 것이 제 경험이었습니다. 그래서 미리 반야바라밀을 닦는 방법을 이야기 해두었습니다. -> 반야를 닦는 법 바로가기
반야를 닦아보면, 반야속에서 근본성품이 뽑아져나오는 것을 너무나 간단히 알 수 있습니다. 반야심경에도 나오죠.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반야바라밀다 해야 조견오온개공이 되는 겁니다. 반야없이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반야는 모든 것의 바탕이 되고 모든 것의 기초가 되고 모든 것의 어머니가 됩니다. 시시각각의 접하는 상황속에서 기준점을 반야로 삼으세요. 소승불교의 마음부수 공부나 위빠사나도 결국 반야로 총집결 됩니다. 반야는 어머니로서 힘과 권력의 상징인 아버지가 아닙니다. 온화하고 부드럽게 소승의 위빠사나 16단계를 이미 반야속에서 녹여가게 되므로 수행이 정말 편안하게 됩니다. 억지로 사념을 일으키도 않아도 되고 어떤 성질에 마음을 일으키지 않아도 반야를 통해 총집결된 마음이 자연스럽게 청정으로 연결됩니다. 쉽게 말하면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게 됩니다. 그래서 반야를 엄한 아버지가 아니고 자애로운 어머니라고 옛분들이 불럿나 봅니다. 즐겁게 공부할 수 있습니다.
이 단계에서 벌써 천안통없이 시방세계를 관찰하고 신통을 얻어 시방세계를 마음대로 유행하는 것이라 하니, 수행자가 시방세계관찰과 신통이 없다면 이미 청정하지 않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얼마나 청정한 율의가 중요한지 삼가 고개가 숙여집니다.
- 성품을 증진하여 현재의 업을 어긴다.
경계[塵]를 이미 인연하지 않고 감관[根]이 짝할 상대가 없으며,흐름을 돌이켜 유일한 진실이 완전하여 여섯 작용이 행하지 않으므로, 시방국토가 밝고 맑아서, 유리 안에 밝은 달이 달린 것과 같으리라. 그러면 몸과 마음이 시원하고 미묘하고 원만하고 평등하여 매우 안온한 경지에 들어서, 일체여래의 원만하고 청정하고 미묘하고 비밀한 도리가 다 그 속에 나타나니, 이 사람은 곧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게 되며, 이로부터 차례로 닦는 가운데 곳에 따라 수행을 일으켜서 안전하게 성인의 자리에 들게 되느니라.
경계를 인연하지 않고, 감관이 짝할 상대가 없음에 강조해야 할 것입니다.
경계를 이미 인연하지 않는다는 것은, 마음이 상대하고 있는 것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크게 예를 들어보면, 내가 돈을 벌기위해 끊임없이 돈을 생각하고 돈을 벌어낼 궁리만 하는 상황에서 , 그저 먹고 살기위한 방편으로서만 돈을 벌고 수행에 집중해나간다는 정도면 경계에 인연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또 다른 예로 본다면, 작게는 오늘 무슨 무슨 사건을 벌일 것을 계획을 짜서 그 사건에 치중해 들어가는 것은 경계와 인연한 것이라고 보입니다. 더 작은 예로 집에 무슨 무슨 것들이 있는데 , 오늘 그것들 관리를 위해 하루종일 애써보아야겠다하면 경계와 인연하는 것입니다. 더 미세하게 예를 들어보면 좌선에서 마음이 일어남과 사라짐의 진동이 은근하고 미세한 부분까지 없어지는 의미합니다.
감관이 짝할 상대가 없다는 것은 안이비설신의에서 오는 것들은 경계에서 오는 것이므로 경계를 인연하지 않아서 당연히 감관이 짝할 상대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청정 수행이 계속 이어져 오감은 물론 자신의 마음에서도 청정함으로 인해 뭔가 상대할 만한 대상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과 마음이 시원하고 미묘하고 원만하고 평등하고 안온하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몽땅 부숴진 허무한 경지가 아닌 것입니다. 자 이제 답이 나오죠. 청정에서 모든 잡다한 경계가 사라지는 와중에 도과를 발현해서 충만해서 전혀 부족하지 않는 상태가 오는 것입니다.
여기서 비밀한 도리에 의해 무생법인을 얻는다 하셨습니다. 비밀한 도리는 천하 또는 우주가 인간과 감응하는 방식을 이야기합니다. 저의 경우 맑디 맑은 마음에 어두움을 떠올리면 정말 어둡고 밝음을 떠올리면 광명이 보이고 선선한 기운이 몸과 깊은 마음 속까지 관통하는 상태까지는 본 듯 합니다. 몸의 상태도 급작스럽게 변합니다. 이 비밀한 도리에 살짝이라도 접하게 되면 처음에는 220V 전기에 감전된 상태처럼 되며 그와 유사한 짜릿함이 온 몸을 휩싸게 되고 몸은 가벼워서 걸어다녀도 미끌어져서 다니는듯 하게 됩니다. 나중에 어떻게 되는지 스스로 공부해보면 딱 알게 됩니다. 맛만 봐도 모를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