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천송반야경에 발췌

〔세존께서 계속 말씀하셨다.〕

“게다가 보살마하살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제법(諸法)에 집착하지 않는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제법에서는 구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제법은 불생(不生)이라는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제법은 무변(無變)하다는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제법의 무아(無我)를 고지(告知)하는 방식으로, 제법을 진여지(眞如智)에 따라 이해하는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법의 표현은 명칭에 불과하며 〔세간의〕 언설(言說)에 지나지 않는다는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명칭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그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는 것이니라. 명칭 〔그 자체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라.

제법은 〔세간의〕 언설도 말에 의한 표현도 갖지 않으며 언설되지도, 말로 표현되지도 않는다는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제법은 무량(無量)하다는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물질이 무량하다는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감각·표상·의욕·사유가 무량하다는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제법은 무상(無相)하다는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제법을 통찰하는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제법의 본성은 청정하다는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제법은 무언(無言)하다는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제법은 불멸이기에 〔기꺼이 이를〕 희사(喜捨)한다는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제법은 열반을 획득하기에 진여와 같은 것이라는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제법은 절대적인 무생(無生)이기에 오지도 가지도 않으며 알지도 나지도 않는다는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제법은〕 자기와 타인을 보지 않는다는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제법은 성스럽고 공양을 받을 만하며, 본성적으로 청정하다는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제법은 〔무거운〕 짐을 지우지 않는다는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제법은 머물 자리도 장소도 갖지 않는다는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물질은 본성적으로 자성적으로 〔머물〕 자리도 장소도 갖지 않기 때문이니라. 감각·표상·의욕도 이와 같으며, 사유 〔또한〕 본성적으로 자성적으로 〔머물〕 자리도 장소도 갖지 않기 때문이니라.

제법의 소멸이 환희를 준다는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제법은〕 쾌락도 금욕도 없다는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제법은〕 애착도 무-애착도 없다는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물질은 본성적으로 자성적으로 애착되지도 애착되지 않지도 않기 때문이니라. 감각·표상·의욕도 이와 같으며, 사유 〔또한〕 본성적으로 자성적으로 애착되지도 애착되지 않지도 않기 때문이니라.

〔제법은〕 본성적으로 정화되었다는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제법은 집착되지 않으며 집착도 무-집착도 결여한다는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제법은 깨달음이고 불타의 지식으로 이해된다는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제법은 공성(空性)이고 무상(無相)이며 무원(無願)이라는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제법은 해독작용을 지닌 자애를 최우선시한다는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제법은 자애와 자비〔의 마음〕을 베풀며 환희〔의 마음〕과 〔한편에 치우지지 않는〕 무관〔의 마음〕을 베푼다는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제법은 최고의 원리이며, 모든 과오를 만들어내지 않는다는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제법은 원해지지도 방해되지도 않는다는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대해(大海)가 경계를 갖고 있지 않은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의 무-경계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항하가 경계를 갖고 있지 않은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의 무-경계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수미산이 다채롭다는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의 다채로움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물질이 경계를 갖고 있지 않은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의 무-경계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감각·표상·의욕·사유가 경계를 갖고 있지 않은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의 무-경계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태양광채륜의 비춤이 경계를 갖고 있지 않은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의 무-경계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모든 음성이 경계를 갖고 있지 않은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의 무-경계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모든 불법의 획득이 경계를 갖고 있지 않은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의 무-경계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모든 유정의 세계가 갖는 복덕과 지혜의 자량(資糧)이 경계를 갖고 있지 않은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의 무-경계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지계(地界)가 경계를 갖고 있지 않은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의 무-경계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수계 화계 풍계 허공계 의식계가 경계를 갖고 있지 않은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의 무-경계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누적된 선불선법이 무량하다는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의 무량성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누적된 제법이 무량하다는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의 무량성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제법에 대한 삼매의 획득이 경계를 갖고 있지 않은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의 무-경계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모든 불법이 경계를 갖고 있지 않은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의 무-경계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제법이 경계를 갖고 있지 않은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의 무-경계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공성이 경계를 갖고 있지 않은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의 무-경계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마음과 마음의 작용인 심소(心所)가 경계를 갖고 있지 않은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의 무-경계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마음의 움직임이 경계를 갖고 있지 않은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의 무-경계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선불선법이 무량한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의 무량성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사자의 울음소리와 같은 포효〔함〕의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의 포효〔함〕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제법이 부동(不動)한 방식으로 반야바라밀다의 부동성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물질은 대해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니라. 감각·표상·의욕도 이와 같으며, 사유 또한 대해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니라.
물질은 항하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니라. 감각·표상·의욕도 이와 같으며, 사유 또한 항하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니라.
물질은 다채로운 수미산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니라. 감각·표상·의욕도 이와 같으며, 사유 또한 항하와 다채로운 수미산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니라.
물질은 경계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감각·표상·의욕도 이와 같으며, 사유 또한 경계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물질은 일륜(日輪)이 광채를 일으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니라. 감각·표상·의욕도 이와 같으며, 사유 또한 일륜이 광채를 일으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니라.
물질은 경계가 없는 모든 음성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니라. 감각·표상·의욕도 이와 같으며, 사유 또한 경계가 없는 모든 음성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니라.
물질은 경계가 없는 모든 유정〔의 세〕계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니라. 감각·표상·의욕도 이와 같으며, 사유 또한 경계가 없는 모든 유정〔의 세〕계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니라.
물질은 경계가 없는 모든 불법의 획득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니라. 감각·표상·의욕도 이와 같으며, 사유 또한 경계가 없는 모든 불법의 획득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니라.
물질은 경계가 없는 모든 유정의 세계가 갖는 복덕과 지혜의 자량(資糧)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니라. 감각·표상·의욕도 이와 같으며, 사유 또한 경계가 없는 모든 유정의 세계가 갖는 복덕과 지혜의 자량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니라.
물질은 지계(地界)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니라. 감각·표상·의욕도 이와 같으며, 사유 또한 지계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니라.
물질은 수계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니라. 감각·표상·의욕도 이와 같으며, 사유 또한 수계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니라.
물질은 화계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니라. 감각·표상·의욕도 이와 같으며, 사유 또한 화계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니라.
물질은 풍계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니라. 감각·표상·의욕도 이와 같으며, 사유 또한 풍계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니라.
물질은 허공계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니라. 감각·표상·의욕도 이와 같으며, 사유 또한 허공계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니라.
물질은 누적된 선불선법(善不善法)을 갖지 않기 때문이니라. 감각·표상·의욕도 이와 같으며, 사유 또한 누적된 선불선법을 갖지 않기 때문이니라.
물질은 누적된 제법을 갖지 않기 때문이니라. 감각·표상·의욕도 이와 같으며, 사유 또한 누적된 제법을 갖지 않기 때문이니라.
물질은 경계가 없는 제법에 대한 삼매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니라. 감각·표상·의욕도 이와 같으며, 사유 또한 경계가 없는 제법에 대한 삼매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니라.
물질은 〔자신의 존재를〕 떠난 것이고, 물질의 자성, 물질의 진여는 불타의 법들이기 때문이니라. 감각·표상·의욕도 이와 같으며, 사유 또한 〔자신의 존재를〕 떠난 것이기 때문이니라.
물질은 경계가 없는 제법의 법성〔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니라. 감각·표상·의욕도 이와 같으며, 사유 또한 경계가 없는 제법의 법성〔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니라.
물질은 공하고, 무-경계의 법성〔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니라. 감각·표상·의욕도 이와 같으며, 사유 또한 무-경계의 법성〔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니라.
물질은 경계가 없는 마음과 마음의 작용인 심소(心所)〔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니라. 감각·표상·의욕도 이와 같으며, 사유 또한 경계가 없는 마음과 마음의 작용인 심소(心所)〔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니라.
물질은 마음의 움직임의 생기〔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니라. 감각·표상·의욕도 이와 같으며, 사유 또한 마음의 움직임의 생기〔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니라.
물질은, 인식되지 않는 한, 선불선법이기 때문이니라. 감각·표상·의욕도 이와 같으며, 사유 또한, 인식되지 않는 한, 선불선법이기 때문이니라.
물질은 사자의 포효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니라. 감각·표상·의욕도 이와 같으며, 사유 또한 사자의 포효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니라.
물질은 부동(不動)한 것이기 때문이니라. 감각·표상·의욕도 이와 같으며, 사유 또한 부동한 것이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이와 같은 방식으로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에 접근해야 할 것이니라.02 수보리야,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이 모든 망상과 기만이 제거된 〔정신〕집중, 모든 〔헛된〕 자만이 제거된 〔정신〕집중, 오만이 제거된 〔정신〕집중, 모든 나태함이 제거된 〔정신〕집중, 타인을 헐뜯는 마음이 제거된 〔정신〕집중, 자신에 대한 의식이 제거된 〔정신〕집중, 유정(有情)에 대한 의식이 제거된 〔정신〕집중, 이익과 존경, 그리고 명성이 제거된 〔정신〕집중, 5종의 장애인 5개(五蓋)가 제거된 〔정신〕집중, 질투와 시기가 제거된 〔정신〕집중, 모든 무명의 어둠이 제거된 〔정신〕집중에 의거하여, 반야바라밀다에 접근하고 〔이를〕 철저하게 숙고하며 〔이에〕 도달하며 〔이를〕 이해하고 생각하며 헤아리고 성찰하며 전념할 때, 보살마하살은 모든 공덕을 완성하고 불토(佛土)에 존재하는 무상의 불법들을 완수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니라.”

성스러운 팔천송반야경에서 ‘반야바라밀다로의 접근 방식’으로 불리는 스물아홉 번째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