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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점

참나 진아 대아 하나님의 아들 기타등등 에 관해서 말이 많고, 종교내 다툼도 있고, 종교간 다툼도 강하고, 편가르기도 잘하고, 편을 갈라서 그 핑계로 주위의 것들을 착취하고 공격한다. 심지어 나라끼리 전쟁빌미도 되고 정말 난리다. 악이 횡횡하는 것이다.

해결책

첫번째로 과연 그게 문제가 될까? 있으면 어떻하구 없으면 어떻할래? 있다면 행복하고 없다고 해야 행복한가?

답 : 내가 보기엔 단순히 편가르기에 불과하다 나는 남파 너는 북파. 나는 예수교 나는 불교도. 이런 식으로. 멋도 모르고 편가르기를 외하는지 모르겠다. 바보들이다. 그냥 무식한 것을 빨리 인정하고 서로 자비심을 내는 것이 좋지 않은가?

두번째 있다는게 진실이거나 없다는게 진실이라면 그게 밝혀질까?

답 : 둘다 대책이 없다. 머 이런 저런 논리세워들 보지만 내가 보기엔 설득력이 전혀 없다. 나는 논리나 간접적인 증거 같은 것은 별로 설득력 자체가 없다고 본다.

세번째 있는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등등 말장난으로 해결될까?

답 : 말장난은 말장난일 뿐이다. 진리와 관련이 없다. 중세시대에 지구가 평평하다고 온 세상이 동의했고 동그랗다 하는 사람 다 죽였다. 천억명이 동의해도 아닌 건 아닌 것이다.

나의 견해

나는 너희 들과는 다르다. 나는 그런 황당한 문제에 대해 대답할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다 수행하기도 바쁘다. 쉽게 말하면 행복도 챙기기 바쁘다는 거다.

그리고, 부처님 가르쳐준 바에 의하면 무상,고,무아,공성,반야의 방향으로 수행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안다. 또, 수행해보니 자비심과 현상을 꿰뚫는 지혜와 행복과 선함과 도덕성과 도력은 무상,고,무아,공성,반야 속에서  최대화 된다.

그리고 수행속에서 균형을 찾는게 중요한데, 참나가 있다는 고집이 쎄서 수행이 잘 안되면 없다고 애를 쓰는게 수행이 잘되고, 참나가 없다는 고집에 쎄서 수행이 잘 안되면 있다고 생각하고 수행 하는게 수행이 차라리 잘 된다.

그리고…….경전에 의하면 수행이 진전되었을 때 만나는 그 무었인가가 있다고 부처님이 가르쳐주셨다는 정도는 안다. 또한 부처님께서는 그 다음의 공부도 또 펼쳐지니 더 열심히 하라고 한다. 수학적으로 말하면 0의 자리에서 무한대의 자리가 동시에 펼쳐지는 지점같다고 보인다. 그러면서도 유의 자리에서 있으면서도 무의 자리에 튼튼하게 자리잡는 방식이다. 당신은 0의 자리에서 무한대가 펼쳐지는 것이 참나가 있다 없다 정도로 해결될 것 같은가? 한심한 소리좀 그만 해라.

수행은 고순도로 단련된 순결함속에서 실체라기 말하기엔 뭣한 궁극적 실체를 증득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증득한다는 것도 참..웃기는 말이긴 한데 일단 증득한다고 해두자.)

참나가 있다 없다 등의 단순 무식한 논리로 한 두개 되는게 아니란 소리다. 진보하고 변화해나가면서 공부를 이어가는 길 하나만 쫓아라.

아래는 티벳 해탈의 서에 나오는 말이다.

내가 절대적인 ‘보는 자’를 찾으면 찾을수록, 그것을 하나의

대상으로서 발견해내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점이 더욱 명백해진다.

그것을 하나의 대상으로서 발견해낼 수 없는 이유는,

단순하게도 그것이 실은 ‘모든 대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내가 ‘느끼는 자’를 느낄 수 없는 것은

그것이 곧 ‘느낌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하는 자’를 경험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곧 ‘경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내면의 ‘진정한 나’가 실제로는 외부의 현실과 하나이며,

그 역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우리가 깨달았기 때문이다.

세계가 곧 나의 몸이며,

보고 있는 내가 곧 보여지는 대상이었다.

이런 경지로 가는 것이 수행이기때문에 , 주객이 없다는 이야기가 튀어나오고 우주의 본성인 자비심이 현현하는 생동감 넘치는 실상에 계합하는 길에 들어서는 것이 수행인데 , 참나 어쩌구 하면서 싸우고 시간낭비하면 어떻하니?

그러니…닥치고 그냥 수행해보는 것이 어떠한가? 그것이 아니라면 그냥 다른데 가서 하던 일을 계속하던지. 쯧쯔.

그러므로 나의 견해는,,

” 당신들이 말하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어떠하리?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면 또 어떠하리? 비가오면 어떠하고 해가 뜨면 어떠하리?

오로지 내 관심은 진리를 향해 한발 한발 가는 것. 오늘 저녁 달이 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