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움을 일으키는 법 경(S35:244) 7. Dukkhadhammasuttaṃ
35:244(4-7) 괴로운 것에 대한 경 3972)잡아함 43권 10(大正 2, 1214a. 잡1173)참조
출처 : https://m.cafe.daum.net/pali-study/9akK/303?listURI=%2Fpali-study%2F9akK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 싸밧티 시의 제따바나 숲에 있는 아나타빈디까 승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수행승들이여’라고 수행승들을 부르셨다. 수행승들은 ‘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모든 괴로움을 일으키는 법들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면 그는 거기서 자신의 감각적 욕망들을 본 것이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수행승이 모든 괴로운 것이 생겨나고 소멸하는 것을 여실히 안다면, 그는 참으로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바로 보아 그가 자신의 감각적 욕망들을 보면 감각적 욕망에 대한 욕구, 감각적 욕망에 대한 애정, 감각적 욕망에 대한 홀림,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증은 더 이상 잠복하지 못한다. 그 감각적 쾌락에 대한 그 욕망, 그 애착, 그 미혹, 그 고뇌가 잠재하지 않도록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관찰한다. 그러면 그는 행동하고 머무는 방법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행동하고 그렇게 머묾으로 해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더 이상 그에게 잠복하지 못한다. 그는 살면서 탐욕스럽고 우울하고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들이 달라붙지 못하도록 유행하고 사는 것을 깨우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모든 괴로움을 일으키는 법들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가? 수행승들이여, 어떻게 수행승이 모든 괴로운 것이 생겨나고 소멸하는 것을 여실히 아는가? ‘이것이 물질이요, 이것이 물질의 일어남이요, 이것이 물질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느낌이요, … 인식이요 … 심리현상들이요 … 이것이 알음알이요, 이것이 알음알이의 일어남이요, 이것이 알음알이의 사라짐이다.’라고
물질은 이와 같고 물질의 발생은 이와 같고 물질의 소멸은 이와 같다.
느낌은 이와 같고 느낌의 발생은 이와 같고 느낌의 소멸은 이와 같다.
지각은 이와 같고 지각의 발생은 이와 같고 지각의 소멸은 이와 같다.
형성은 이와 같고 형성의 발생은 이와 같고 형성의 소멸은 이와 같다.
의식은 이와 같고 의식의 발생은 이와 같고 의식의 소멸은 이와 같다.
모든 괴로움을 일으키는 법들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수행승이 모든 괴로운 것이 생겨나고 소멸하는 것을 여실히 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감각적 욕망에 대한 욕구, 감각적 욕망에 대한 애정, 감각적 욕망에 대한 홀림,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증이 더 이상 잠복하지 못하도록 자신의 감각적 욕망들을 보는가?
수행승들이여, 어떻게 수행승이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바로 보아 그 감각적 쾌락에 대한 그 욕망, 그 애착, 그 미혹, 그 고뇌가 잠재하지 않도록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관찰하는가?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한 길이 넘는 숯불 구덩이가 있는데 연기가 나지 않고 활활 타오르는 숯불로 가득 차 있다 하자.
그때 살기를 바라고 죽기를 바라지 않으며 행복을 바라고 괴로움을 혐오하는 사람이 힘센 두 남자에 의해 각각 양 손이 잡힌 붙잡힌 채로 숯불 구덩이 가까이로 끌려온다 하자.
비구들이여, 그러면 그 사람은 이리저리 몸을 마구 비틀 것이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그 사람에게는 ‘이제 나는 숯불 구덩이에 빠질 것이고 그 때문에 죽거나 죽음에 버금가는 고통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사람 키보다 깊은 숯불화로가 불꽃도 없고 연기도 없는 숲불로 가득 찼는데, 마침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고 즐거움을 좋아하고 괴로움을 싫어하는 한 사람이 왔다고 하자. 두 사람의 힘센 장정들이 손을 붙잡고 그를 숯불화로에 넣는다면, 그는 몸부림치며 몸을 굽혀 피할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수행승들이여, 그 사람은 ‘내가 숯불화로에 빠지면 그 때문에 죽음에 이르거나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맞을 것이다.’라고 알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비구는 감각적 욕망을 숯불 구덩이처럼 본다. 그가 자신의 감각적 욕망들을 이와 같이 보면 감각적 욕망에 대한 욕구, 감각적 욕망에 대한 애정, 감각적 욕망에 대한 홀림,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증은 더 이상 잠복하지 못한다.”
수행승들이여, 수행승이 숯불화로의 비유처럼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바로 보아 그 욕망, 그 애착, 그 미혹, 그 고뇌가 잠재하지 않도록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관찰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그렇게 행동하고 그렇게 머묾으로 해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더 이상 그에게 잠복하지 못하도록 행동하고 머무는 방법을 깨닫게 되는가?
수행승들이여, 어떻게 수행승이 살면서 탐욕스럽고 우울하고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들이 압도하지 못하도록 유행하고 사는 것을 깨우쳐야 하는가?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많은 가시가 있는 숲에 들어간다 하자. 그러며 그의 앞에도 가시요, 뒤에도 가시요, 왼쪽에도 가시요, 오른쪽에도 가시오, 아래에도 가시요, 위에도 가시일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많은 가시가 돋친 정원에 들어갔다면, 그의 앞에도 가시, 뒤에도 가시, 왼쪽에도 가시, 오른쪽에도 가시, 아래에도 가시, 위쪽에도 가시가 있을 것이다. 그는 ‘제발 가시가 나를 찌르지 않았으면!’이라고 하면서 마음 챙겨서 나아갈 것이고 마음 챙겨서 물러날 것이다. 그는 ‘가시가 나를 찌르지 말기를!’이라고 새김을 확립하고 나아가거나 새김을 확립하고 물러나야 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 있으면 성자의 율에서는 이를 일러 가시라 한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세상에 어떠한 사랑스런 형상이나 즐거운 형상이라도 그것은 고귀한 님의 규범에는 가시에 불과하다.
“이를 가시라고 안 뒤 단속과 단속하지 못함을 알아야 한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알고 난 뒤에 제어와 제어하지 못함에 대해 알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단속하지 못하는가?
수행승들이여, 제어하지 못함이란 무엇인가?
여기 비구는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수행승이 눈으로 형색을 보고 사랑스러운 형색에는 열중하고 사랑스럽지 않는 형색은 혐오한다.
그는 마음 챙김을 확립하지 못한 채 머물고 마음은 제한되어 있다.
그리고 그는 이미 일어난 삿되고 해로운 법들이 남김없이 소멸되어버리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시각으로 형상을 보고 사랑스런 형상에 몰입하고 사랑스럽지 않은 형상을 혐오하고 신체적으로 새김을 확립하지 않고 정신적으로 저열하게 산다면, 그는 이미 일어난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들이 남김없이 사라지는 마음에 의한 해탈과 지혜에 의한 혜탈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한다.
귀로 소리를 듣고 … 코로 냄새를 맡고 … 혀로 맛을 보고 …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 …청각으로 소리를 듣고 사랑스런 소리에 몰입하고 사랑스럽지 않은 소리를 혐오하고 신체적으로 새김을 확립하지 않고 정신적으로 저열하게 산다면, 그는 이미 일어난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들이 남김없이 사라지는 마음에 의한 해탈과 지혜에 의한 혜탈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한다.
후각으로 냄새를 맡고 사랑스런 냄새에 몰입하고 사랑스럽지 않은 냄새를 혐오하고 신체적으로 새김을 확립하지 않고 정신적으로 저열하게 산다면, 그는 이미 일어난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들이 남김없이 사라지는 마음에 의한 해탈과 지혜에 의한 혜탈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한다.
미각으로 맛을 맛보고 사랑스런 맛에 몰입하고 사랑스럽지 않은 맛을 혐오하고 신체적으로 새김을 확립하지 않고 정신적으로 저열하게 산다면, 그는 이미 일어난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들이 남김없이 사라지는 마음에 의한 해탈과 지혜에 의한 혜탈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한다.
촉각으로 감촉을 촉지하고 사랑스런 감촉에 몰입하고 사랑스럽지 않은 감촉을 혐오하고 신체적으로 새김을 확립하지 않고 정신적으로 저열하게 산다면, 그는 이미 일어난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들이 남김없이 사라지는 마음에 의한 해탈과 지혜에 의한 혜탈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한다.
마노로 법을 지각하고 사랑스러운 법에는 열중하고 사랑스럽지 않는 법은 혐오한다.
그는 마음 챙김을 확립하지 못한 채 머물고 마음이 제한되어 있다. 그리고 그는 이미 일어난 삿되고 해로운 법들이 남김없이 소멸되어버리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정신으로 사실을 인식하고 사랑스런 사실에 몰입하고 사랑스럽지 않은 사실을 혐오하고 신체적으로 새김을 확립하지 않고 정신적으로 저열하게 산다면, 그는 이미 일어난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들이 남김없이 사라지는 마음에 의한 해탈과 지혜에 의한 혜탈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단속하지 못한다.”
수행승들이여, 제어하지 못함이란 이와 같은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단속하는가?
수행승들이여, 제어란 무엇인가?
세상에 수행승이 시각으로 형상을 보고 사랑스런 형상에 몰입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은 형상을 혐오하지 않고 신체적으로 새김을 확립하고 무량한 마음으로 산다면, 그는 이미 일어난 악하고 불건전 상태들이 남김없이 사라지는 마음에 의한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안다.
청각으로 소리를 듣고 사랑스런 소리에 몰입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은 소리를 혐오하지 않고 신체적으로 새김을 확립하고 무량한 마음으로 산다면, 그는 이미 일어난 악하고 불건전 상태들이 남김없이 사라지는 마음에 의한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안다.
후각으로 냄새를 맡고 사랑스런 냄새에 몰입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은 냄새를 혐오하지 않고 신체적으로 새김을 확립하고 무량한 마음으로 산다면, 그는 이미 일어난 악하고 불건전 상태들이 남김없이 사라지는 마음에 의한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안다.
미각으로 맛을 맛보고 사랑스런 맛에 몰입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은 맛을 혐오하지 않고 신체적으로 새김을 확립하고 무량한 마음으로 산다면, 그는 이미 일어난 악하고 불건전 상태들이 남김없이 사라지는 마음에 의한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안다.
촉각으로 감촉을 촉지하고 사랑스런 감촉에 몰입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은 감촉을 혐오하지 않고 신체적으로 새김을 확립하고 무량한 마음으로 산다면, 그는 이미 일어난 악하고 불건전 상태들이 남김없이 사라지는 마음에 의한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안다.
정신으로 사실을 인식하고 사랑스런 사실에 몰입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은 사실을 혐오하지 않고 신체적으로 새김을 확립하고 무량한 마음으로 산다면, 그는 이미 일어난 악하고 불건전 상태들이 남김없이 사라지는 마음에 의한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안다.
수행승들이여, 제어란 이런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이렇게 행동하고 이렇게 머물 때 그가 이따금씩 마음 챙김을 놓아 버리기 때문에 족쇄와 관계된 기억과 사유가 있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일어나게 되면
수행승들이여, 그 수행승이 이와 같이 유행하며 이와 같이 살면서 때때로 새김을 잃고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 결박의 원인이 되는 기억과 의도를 일으키면, 비록 마음 챙김이 느리게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는 즉시에 그것을 버리고 제거하고 끝장내고 존재하지 않게 한다.
수행승들이여, 그는 뒤늦게 새김을 일으키더라도, 그것을 빨리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고 종결하고 없애 버린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온 종일 데워진 철판 위에다 두세 방울의 물을 떨어뜨리면 물이 떨어지는 것은 느리지만 그것은 즉시에 증발해서 사라지게 되는 것과 같다.
수행승들이여, 어떤 사람이 대낮에 달구어진 쇠솥에 두세 방울의 물을 떨어뜨리더라도 그것을 빨리 증발시키고 소모시킬 수 있다.
수행승들이여, 그 수행승이 이와 같이 유행하며 이와 같이 살면서 때때로 새김을 잃고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 결박의 원인이 되는 기억과 의도를 일으키면, 수행승들이여, 그는 뒤늦게 새김을 일으키더라도, 그것을 빨리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고 종결하고 없애 버린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와 같이 행동하고 이와 같이 머무는 방법을 깨달아
그렇게 행동하고 그렇게 머묾으로 해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더 이상 그에게 잠복하지 못한다.
수행승들이여, 그 수행승은 이와 같이 유행하며 살면서
탐욕스럽고 우울하고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들이 압도하지 못하도록 유행하고 사는 것을 깨우친다.
<S12:32
‘도반들이여, 나는 안으로 해탈을 하였고 모든 취착이 다 하였기 때문에
번뇌들이 더 이상 흐르지 않는 그러한 마음 챙김으로 머물며,
또한 나 자신을 경멸하지 않습니다.’라고 저는 이렇게 설명하겠습니다.”
‘벗이여, 나는 안으로 해탈하여 [54] 모든 집착을 소멸하고 올바른 새김을 확립한다.
올바른 새김을 확립하는 까닭에 번뇌가 따르지 않고 자신을 게을리 관찰하지 않는다.’라고 대답 하겠습니다.
그 질문을 받으면 세존이시여, 저는 이와 같이 대답하겠습니다.”
<벗이여, 나는 ‘안으로 벗어나(=안으로 해탈하여)’ 一切의 取를 止滅하고 여실한 사띠(sati)에 머문다. 여실한 사띠(sati)에 머무는 까닭에 번뇌가 수반되지 않고 我를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저는 그 질문에 답하겠습니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감각의 대문을 잘 지키며 머물러라.
그대들은 눈으로 형색을 봄에 그 표상[全體相]을 취하지 말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細相]을 취하지도 말라.
만약 그대들의 눈의 감각기능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대들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런 그대들은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눈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라.
귀로 소리를 들음에 … 코로 냄새를 맡음에 … 혀로 맛을 봄에 … 몸을 감촉을 느낌에 …마노로 법을 지각함에 그 표상을 취하지 말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을 취하지도 말라
만약 그대들의 마노의 감각기능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대들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런 그대들은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라.”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감각능력의 문을 수호하고 지내면, 악마 빠삐만이 실망하여, 승냥이가 거북이로부터 기회를 얻지 못하고 떠나는 것처럼, 그대들을 떠나 갈 것이다.
[세존]
거북이가 자기의 등껍질에 팔다리를 당겨 넣듯, 수행승은 정신의 사유를 거두어들이고 집착을 여의어 남을 해치지 않고, 완전히 소멸하여 누구도 비난하지 말아야 하리. “거북이가 자신의 등딱지에 사지를 집어넣듯 비구는 마음에 일어난 사유를 안으로 거둬들여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고 남을 해코지 않으며 완전한 평화를 얻어 아무도 비난해서는 안 되리.”
S10:3
탐욕과 성냄의 원천은 무엇인가? 불쾌함, 즐거움, 소름끼치는 전율은 어디서 솟아나는가? 어린 아이들이 다리를 묶은 까마귀를 날리듯이 마음의 상념이 생겨나는 곳은 어디인가?
[수찔로마 약카]
“애욕과 성냄은 어디서 근원하오? 따분함과 기뻐함과 공포는 어디서 생기오? 마음속 생각들은 어디서 일어나서 아이들이 [묶어 날려 보낸] 까마귀처럼 날아가오?”
탐욕과 성냄은 여기에 원천이 있다. 불쾌함, 즐거움, 소름돋는 전율은 여기서 생긴다. 어린 아이들이 다리를 묶은 까마귀를 날리듯이 마음의 상념이 이것에서 생겨난다.
[세존]
“애욕과 성냄은 여기에서 근원하노라. 따분함과 기뻐함과 공포는 여기에서 생기노라. 마음속 생각은 여기에서 일어나 아이들이 [묶어 날려 보낸] 까마귀처럼 날아가노라.
애욕에서 솟아나고, 자신에게서 생겨난다. 벵골 보리수의 줄기에 난 싹들처럼, 감각적 쾌락에 매달려서 겹겹이 얽혀 있다. 칡넝쿨이 숲속에 온통 퍼져 있듯이.
참으로 그것은 애정에서 생겨나고 자기 자신에게서 발원하여 생기나니 니그로다 나무의 몸통에서 생겨나 [아래로 뻗어가는 뿌리와도] 같도다. 욕망에 집착하는 것 참으로 다양하여 말루와 넝쿨이 온 숲에 퍼지는 것 같도다.
그것들의 원천을 밝게 아는 사람들은 그것을 없애버리네. 야차여, 들어라. 그들은 다시 태어나지 않기 위해, 건넌적 없고, 건너기 어려운 거센 흐름을 건넌다.
이런 근원 꿰뚫어 아는 사람들은 그것을 남김없이 일소해버리노라. 약카여, 들어라. 건너기 어렵고 이전에는 건너본 적 없는 폭류를 그들은 건너서 다시 태어나지 않도다.”
비구들이여, 왕이나 왕의 대신들이나 친구들이나 동료들이나 친지들이나 혈육들이 이렇게 행동하고 이렇게 머무는 비구로 하여금 재물을 가져가도록 초청하여 말하기를 ‘이리 오시오. 왜 이 가사가 그대를 짓누르도록 내버려둡니까? 왜 머리를 깎고 발우를 들고 돌아다닙니까? 오십시오.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와서 재물을 즐기고 공덕을 지으시오.’라고 한다 하자. 비구들이여, 그러나 그 비구는 이와 같이 행동하고 이와 같이 머무는 방법을 깨달아 그렇게 행동하고 그렇기 머물기 때문에 그가 공부지음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가는 경우란 있지 않다.”
수행승들이여, 왕의 대신이나 친구나 신하나 친지나 혈족이 이렇게 유행하고 사는 수행승에게 재산을 가져다주면서 ‘이 사람아, 어찌 이런 가사가 그래를 괴롭힌단 말인가? 왜 삭발하고 발우를 들고 돌아다니는가? 오라, 세속의 생활로 돌아가서 재물을 즐기고 공덕을 쌓자!’라고 해도 수행승들이여, 실로 그 수행승은 이와 같이 유행하며 이와 같이 살면서 공부를 포기하고 세속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강가 강은 동쪽으로 흐르고 동쪽으로 향하고 동쪽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많은 무리의 사람들이 괭이와 바구니를 가지고 와서 ‘우리는 이 강가 강을 서쪽으로 흐르고 서족으로 향하고 서쪽으로 들어가게 할 것이다.’라고 한다 하자.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저 많은 무리의 사람들이 강가 강을 서쪽으로 흐르고 서쪽으로 향하고 서쪽으로 들어가게 할 수 있겠는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세존이시여. 동쪽으로 흐르고 동쪽으로 향하고 동쪽으로 들어가는 것을 서쪽으로 흐르고 서쪽으로 향하고 서쪽으로 들어가게 하기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 많은 무리의 사람들은 분명 지치고 고생만 할 것입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191] 예를 들어 갠지즈 강이 동쪽으로 향하고 동쪽으로 나아가고 동쪽으로 흘러드는데, 많은 사람들이 호미와 바구니를 가지고 와서 ‘우리는 이 갠지스 강을 서쪽으로 향하게 하고 서쪽으로 나아가고 서쪽으로 들어가게 하겠다.’라고 한다면, 그 많은 사람들이 갠지스 강을 서쪽으로 향하게 하고 서쪽으로 나아가고 서쪽으로 들어가게 할 수 있는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그럴 수 없습니다.”
[세존]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갠지스 강으로 동쪽으로 향하고 동쪽으로 아아가고 동쪽으로 들어가는데 그것을 서쪽으로 향하고 서쪽으로 나아가고 서쪽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은 단지 많은 사람을 피곤하고 곤혹하게 할 뿐, 매우 어렵습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그 수행승은 이와 같이 유행하며 살면서 탐욕스럽고 우울하고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들이 압도하지 못하도록 유행하고 사는 것을 깨우친다.
수행승들이여, 왕의 대신이나 친구나 신하나 친지나 혈족이 이렇게 유행하고 사는 수행승에게 재산을 가져다주면서 ‘이 사람아, 어찌 이런 가사가 그래를 괴롭힌단 말인가? 왜 삭발하고 발우를 들고 돌아다니는가? 오라, 세속의 생활로 돌아가서 재물을 즐기고 공덕을 쌓자!’라고 해도 수행승들이여, 실로 그 수행승은 이와 같이 유행하며 이와 같이 살면서 공부를 포기하고 세속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수행승들이여, 오랜 세월 마음이 멀리 여읨으로 향하고, 멀리 여읨으로 나아가고, 멀리 여읨으로 도달하게 된 자를 이처럼 세속의 삶으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A23:16 등에서
5온(色,受,想,行,識)이 苦法(dukkhadham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