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중에 중 눈을 감는 건가요?

답: 그럼요.그럼요. 원인에 대한 이야기예요. 산란함 생기는 원인. 그 다음에 지금 또 하나 생각났는데, 우리가 “명상한다.”라고 할 때 눈을 감잖아요. 눈은 감으면 안되는 거예요. 눈을 감으면 절대로 안돼요. 불상을 보면 눈 감고 계시는 불상이 하나도 없어요. 왜 그럴까요? 부처님들은 항상 삼매에서 벗어나지 않아요. 눈을 감으면 어두워지니까 혼침이 생겨요. 처음에는 눈을 감으면 집중력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도움이 되지 않고 해가 되는 거예요. 눈을 뜨면 처음에는 어려워요. 눈이 지금 보이는 대상에 향해서 마음도 그 쪽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지만 그래도 그것은 겪어야 되요. 집중하는 것은 그것을 넘어서야 되요. 그것을 넘지 않고 여기에 안주하면 나중에 절대로 집중이 안돼요. 그래서 지금 눈에 보이거나 귀에 들리는 것들에 걸리는 것은 우리가 해결하고 가야 되요. 한편, 눈을 감지 않고 크게 떠서 신경쓰고 볼 필요는 없는 거예요. 눈은 그냥 그대로 두고, 좋은 것이나 안 좋은 것이나 아름답거나 못생기거나 어떤 것이 나타나더라도 신경을 안 쓰면 되는 거예요. 처음에는 어렵지만 이 경험을 얻어야 되요.
그 다음에 또 한가지는 전에 말했지만 ‘보이는 대상에 집중하는 것’이라면 그건 삼매를 닦는 방법을 잘 몰라서 그런거에요. 그래서 근식根識에 삼매가 생길 수가 없어요. 절대로 불가능 해요. 없는 것을 우리가 닦아야 하는 것도 아니에요. 눈을 감아야 되는 것도 아니에요. 눈에 어떤 것이 보이면 그대로 보고 또는 걸린다면 그것을 없애면서 어느 정도 노력하면 그 다음에는 완전히 신경을 쓰지 않게 되요. 또 처음에 대상이 크면 쉬워요. 그렇지만 너무 크면 별로 의미가 없어요. 조금 작아야 어려운 점이 적을 수 있고, 그렇다고 너무 작으면 또 어렵습니다. 어느 정도 능력이 생기면 그 다음에 해도 됩니다.
아까 겐 니마 린포체께서 말씀을 하신 적 있다고 하는데 제가 직접 들은 이야기는 아니고, 스승께서 장난으로 이런 말씀을 하셨답니다. 오늘 맛있는 차 한잔 가지고 오라고 하시면서,“차를 마시면 우리 머리카락이 수천억 개로 분리시켜도 더욱 상세하게 볼 수 있는 이런 느낌이 있다.”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거에요. 자기 마음에 얼마만큼의 능력이 생기면 대상이 얼마나 작더라도 그 만큼 삼매의 힘이 생긴거에요. 예를 들어서 밀교 수행자들의만달라 그림 있잖아요. 이 손안에 만달라 그림을 상세하게 떠올릴 수 있고, 열매와 콩 하나에 만달라를 상세하게 떠올리기도 합니다. 콩 하나에 자기가 관상하는 신의 만달라를 상세하게 관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느 정도 능력이 생긴 이후의 이야기이고, 지금은 생각이 나서 말씀 드리는 거에요.

1. 청문력聽聞力->내주심
요의법을 타인에게서 들음으로써 마음이 대상에 머물뿐, 자기 자신이 익숙해짐으로써 머무는 것이 아니다.
첫 번째는청문력입니다. 청문하는 것은 문사수聞思修 중의 문 상태예요. 문이 첫번째 단계에요. 이 때가 9주심 중의 첫 번째인내주심의 단계예요. 처음에 삼매를 닦는 방법들을 타인에게 듣고 스승에게 듣고 집중하려고 노력하는 첫번째 단계에요. 그래서 청문력이라고 하는 거에요. 그래서 내주심을 닦을 때에도 힘이 생겨야 되요. 첫단계에 힘이 생기지 않으면 두번째 단계에 올라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첫번째부터 힘이 생겨야 합니다.

2. 사유력思惟力 -> 속주심
앞에서 마음이 대상에 머문뒤의 흐름을 자꾸 생각하여 집중의 흐름이 약간 지속될 수 있는 능력이처음 생기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사유력입니다. 사유력은 ‘사유하다’ 라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한다.’라고 하는 그런 것입니다.첫단계에서의 집중이 조금 지속되면 두 번째 사유력이 생깁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해요. 우리가 처음에는 한 대상을 생각하다가 대상을 버리고 산란함이 생겨요. 다시 대상을 잡고 다시 또 놓쳐버려요. 이것을 반복해요. 그렇지만 이것도 해야 됩니다. 첫째 단계가 이 정도이고, 단지 한 찰나가 조금 지속 되는 것이라면, 그 지속력에 어느만큼 힘이 생기고 조금 더 지속되는 것이 두 번째 단계에요. 두 번째 단계에서 지속되는 힘이 생기는 거에요. 너무 길지 않더라도 앞에서 마음이 대상에 머문 뒤의 흐름을 자꾸 생각하여 집중의 흐름이 약간 지속될 수 있는 능력이 처음 생기는 것입니다.

3. 억념력憶念力 -> 안주심, 근주심
마음이 대상에서 산란하면 근본 대상을 기억하여 안으로 흡수하고 억념의 힘을 생기게 하여 산란하지 않도록 한다.
세 번째는 억념력 입니다. 억념력 시기는 9주심 중에 세 번째하고 네 번째가 이 안에 포함됩니다. 집중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마음이 바깥으로 나가요. 그러다 또 다시 돌아와서 집중합니다. 여기서 억념의 힘이 처음 생기고 억념의 힘이 생김으로써 산란하지 않도록 하는 입니다. 세 번째 억념력은 마음이 대상에서 산란해지면 근본 대상을 다시 기억하여 안으로 흡수하고 억념의 힘을 생기게 하여 산란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4. 정지력正知力->조복심, 적정심
분별과 수번뇌隨煩惱의 상相에 산란한 허물을 정지로써 바라보고 산란하지 않도록 한다.
네 번째는 정지력 입니다.정지력에 구주심의 다섯 번째하고 여섯 번째가 속합니다. 여기에서 정지가 생기는 거예요. 여기서 정지의 힘으로 분별과 수번뇌의상에 산란함의 허물을 알고 바로 알아차리고 산란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에요. 정지의 힘이 생기고, 정지의 힘으로써 분별과 수번뇌들이 생기면 ‘그것은 산란함의 허물이다.’ 라고 알아차리고 산란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5. 정진력精進力 ->최극적정심, 전주일경심
미세한 분별과 수번뇌들도 정진으로 멸하여 혼침과 도거 등으로 집중에 방해할 수 없게 되고 집중이 지속된다.
네 번째는 정진력 입니다. 정진력에구주심 중 일곱 번째하고 여덟 번째가 이 안에 속합니다. 이 때는 앞에서 생긴 정지의 힘이 더욱 더 커지고 미세한 분별과 수번뇌들이 생기면 바로 바로 알아차리고 생기지 않도록 하는 상태에요. 그래서 여기 정지력 시기에는 혼침과 도거, 특히 도거에 의해 해를 받지 못합니다. 집중도 지속됩니다. 도거로써 해치지 못한다면 당연히 집중은 지속되지요.
6. 관습력串習力 -> 평등주심
이전의 집중이 지속되어 익숙해짐으로써 노력 없이 대상에 머물 수 있게 된다.
마지막은 관습력입니다. 그것은 평등주심의 단계입니다. 앞에서 집중의 힘도 생기고 산란함의 힘이 완전히 없어지고 나니까 여기서는 자유자재로 집중할 수 있게 되는 상태가 됩니다. 또는 아까 말씀을 드린 것처럼 아홉 번째 단계에서는 노력에 의지 합니다. 여기서는 노력이 필요 없다고 하기 보다는 노력에 의지하지 않아요. 옛날에 존자님께서 이런 말씀 하신 적이 있다고 하십니다. 어렸을 때 당신 스승님께“제가 좀 노력해서 보리심을 얻으면 그 다음부터 너무너무 즐겁게 자고 싶다.” 고요. 그래서 우리가 구주심 단계에 도달하면 푹 자면 될 거예요. (웃음) 아니, 더욱 바빠질 겁니다.

질문 :관습력이란게 노력에 의지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관습력인가요? 뜻이 어떻게 되는지요?

답: 습관이예요 습관. 원래 표현할 때는 습관이라고 하고, 여기서 표현할 때는 관습이라고 합니다. 티벳말로는‘용쑤뒤빼똡’이라고 합니다.‘완전히 익숙해진다’는 말이에요. 우리가 완전히 익숙해지면 우유하고 물 섞어 놓은 것처럼 마음과 대상이 하나로 됩니다. 한국에서 마음과 대상을 하나로, 라고 이야기 하잖아요. 그것 전혀 아니예요. 마음이 완전히 그 대상에 집중을 하면서 대상에 빠졌다는 의미에요. 대상에 빠졌기 때문에 마음하고 대상이 서로 분리될 수 없다는 그런 의미에요. 예를 들어서 자량도와 가행도 시점에서 공空을 깨달은 지혜와 견도見道의 공성을 깨달은 지혜가 공성에 대해 조금 이해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별로 차이가 없지만, 대상과 의식, 둘 사이에서는 크게 차이가 있어요. 견도 전, 가행도의 세제일법까지는 분별지이고 그 다음부터가 무분별지에요. 그래서 분별지들 대상으로 의식은 쉽게 구별할 수 있어요. 무분별들, 대상으로 그렇게 구별할 수 없어요. “물과 우유를 섞어 놓은 것처럼 삼매에 간다.”고 그런 표현을 해요.

질문: 무분별지라고 말할 수 있는 거예요? 구주심에서는?

답: 그건 아니예요. 지금은 분별이에요. 우리가 어떤 것을 생각하더라도 첫 토대는 분별지에요. 지금은 무분별에서 공덕이 생길 수가 없어요. 예를 들어서 오근식이 무분별인데, 불상을 보고“아, 부처님께서 위대하시다.”고 눈으로 보게 되면 마음에 신심이 일어나잖아요. 그래서 그런 경험들이 도움이 될 수 있어요. 그런 경우는 있어요. 마음에 닦아서 생기는 공덕들이 처음에는 무분별에서 생기지 않아요. 예를 들어서 지금 우리가 공성을 생각하면 반드시 100% 분별지로써 생각해야 되요. 무분별로써는 불가능해요. 아까 말씀드린 것이 그거에요. 세제일법까지는 분별이에요. 세제일법, 문사수 등도 처음에는 다 분별이에요.

질문 :사마타의두가지 특성 중에 밝음하고 집중이 있잖아요. 밝음을 명료함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나요?

답: 빛 때문에 어두움이 없어지는 거에요. 이것이 밝음이에요.

질문 : 대상을 마음속에 떠올려서 보고 있을 때 밝은 상태를 이야기하는 건가요? 단지 어둠에 반대되는 밝음?
답: 네. 어둠에 반대되는 밝음입니다.

질문 : 명료한 것과는 다른가요?

답: 좀 다를거에요. 명료하다는 것이 확실하다라는 뜻이죠?

질문 : ‘분명하다’는 뜻이요.

답: 그건 아니에요.

네 가지 작의

삼매를 닦는 데 있어서 장소, 집 등 집안에 무엇 무엇이 필요한지 경에서 상세하게 나옵니다. 이런 것에 대한 차이는 별로 없어요.
1. 집중하여 들어가는 작의 -> 내주심, 속주심
내주심과 속주심 때에는 마음이 집중되는 것과 집중되지 않는것 둘중 집중안되는것이 더많다.
집중하여 들어가는 작의’라고 했는데 ‘노력하여 들어가는 작의’ 와 같은 말이고, 이 때는 구주심 중 내주심과 속주심이 속합니다. 그 첫번째 단계에서는 집중되는 것과 집중되지 않은 것의 두 가지 중에 집중이 안되는 경우가 더욱 더 많아요. 그것은 당연한 거에요.
2. 끊어짐이 있게 들어가는 작의
-> 안주심, 근주심, 조복심, 적정심, 최극적정심
이 때는 혼침, 도거로써 장애가 되어 삼매가 오래 지속되지 못하기 때문에 끊어지고 머무는 것을 반복한다. 그러나 노력하여 집중하지만 마음이 삼매에 들어가지 않는 시간보다 들어가는 경우가 더 길다.
두번째, ‘끊어짐이 있게 들어가는 작의’에는 5가지가 있습니다. 구주심 중 세 번째인 안주심, 네 번째인 근주심, 다섯 번째인 조복심, 여섯 번째인 적정심, 일곱 번째인 최극정점심 까지 입니다. 최극적 정심까지는 끊어짐이 있고 ‘들아가는’ 이라는 의미가 중간중간 산란함이 생길 수도 있음을 말합니다.여기까지는 집중은 지속적으로 할 수 있지만 길게 하지 못하는 상태에요. 실제로는 집중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3. 끊어짐이 없이 들어가는 작의 -> 전주일경심
여기는 혼침과 도거로써 장애가 되지않기 때문에 삼매를 길게 지속한다. 그렇지만혼침, 도거의 감시가 필요하다.
세번째, ‘끊어짐이 없이 들어가는 작의’는 여덟 번째인 전주일경심 입니다. 이것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혼침과도거가 장애하지 못해요. 장애하지 못하기 때문에 ‘끊어짐이 없이’ 라고 하는 거예요. 한번 삼매에 들어가서 집중하면 지속적으로 할 수 있고 그 중간에 혼침과도거가 생겨서 삼매를 장애할 수 없으며, 그러한 장애가 없으니까‘끊어짐이 없이 들어가는 작의’라고 하는 거에요.

4. 노력없이 성취하는 작의 -> 평등주심
여기서는 끊어지지 않고 삼매가 집중되며 노력에 의지하지않고 삼매에 들어간다. 정지로써 감시할 필요도 없게된다. 이구주심은 경안이 생기기전까지며 경안이 생긴 뒤는 실제지로 변한다.
네 번째, ‘노력 없이 성취하는 작의’는 9번째 단계인 평등주심이 속한다. 여기서 끊어지지 않고 삼매가 집중되며 노력에 의지하지 않고 삼매에 들어간다. 정지로써 감시도 필요 없게 된다. 이 구주심은 경안이 생기기 전까지며 경안이 생긴 뒤에는 실제지로 변합니다. 아까 말했던 그거에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질문 있으면 받겠습니다.

질문 : 두 번째 끊어짐 있게 들어가는 작의에서 집중할 수 있지만 집중을 길게 하지 못하는 단계라는 이야기를 했잖아요. 집중을 길게 하는 것은 어느 정도 하는 것을 집중을 길게 하는 것인가요?

답 :그런 기준은 없어요. 때때로 내가 스스로 ‘한시간 정도 하겠다.’라고 생각하면 한 시간 정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겠어요.

질문 : 이 때는 단지 몇 분 정도 집중할 수 있는 정도 아니에요?
답 :그 때 끊어짐이 없이 할 때는 몇 시간 정도 할 수 있을 거예요. 보통 이렇게 말합니다. 확실한 것은 아니에요. 삼매를 성취할 정도라면 하루 24시간 중에 6분의 1인 4시간 정도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한다고 마음을 먹으면 할 수 있는 힘이 생겨야 한다는 겁니다.

질문: 그것이 사마타에 들어가서의 단계에요? 단지 끊어짐이 있게 들어가는 때라면…
답: 그건 몇 분 정도예요. 한찰라에 집중하는 것은 일체중생 다 갖고 있는 거에요. 처음부터 한찰라에 집중하는 힘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지속될 수가 없어요. 기본적으로 누구나, 안식들도 한찰라에 집중되는 거예요. 그렇지만 지금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첫 찰나를 두 번째 찰나에 지속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노력해야 하는 거에요. 그 두 번째가 세 번째에 지속해야 하는 것이 구주심 중의 첫 번째 단계이고 이것이 시작입니다. 첫번째 시작하면서부터 두번째까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질문 : 외부 대상에 집중하는 것을 아까 말씀하셨는데 사마타에들어 갈 수가 없는 거죠? 만약에 연꽃을 보고 있다고 해서 연꽃에 마음을 두고 집중하고 있는 것을 사마타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답 :그건 아니에요. 본다는 것, 눈으로 본다면 명상방법이 잘못됐어요. 억념으로 집중 해야 됩니다. 그것을 기억이라하고,분별이에요. 그래서 그 기억력을 지속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너무 중요해요. 제가 확신하는 거에요. 경에서도 여러차례 나오고 논서에서도 나오고, 아까 겐 니마린포체께서도 이런 말씀 하셨습니다. 저한테도 몇 번 말씀하셨습니다. 서양사람들이 와서 스승님을뵙고 “몇 년 동안 사마타를 닦았는데 성취 못했다.”라고 말씀을 올렸어요. 저는 그 자리에서는 없었지만 그사람들이 떠나고 나서 스승님을 뵙고 말씀 드렸을 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삼매에 대해 어떻게하였느냐?”고 물었더니, 그 사람이 “책상의 문수보살상을 보면서 명상했다고, 집중했다.”고 합니다. 스승께서 “그것은 모두틀렸다. 그렇게는 백년을 노력해도 성취할 수 없다.삼매는 식, 의식(6식)으로 생겨야 하고 근식에서는 절대로 생길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경에서는 부처님께서 항상 어떤 사람을 대상으로 연결시켜서 말씀을 하셨으니까 그때 특별하게 ‘아, 이것은 이런 것이다’라고 그 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예를 들어서 문수보살을 명상할 때는 처음에는 당연히 눈으로 봐야해요. 어떤 모습인지, 얼굴, 정수리, 눈, 코, 모습, 색깔 까지도 눈으로 보고, 그 다음에 기억으로써 그것을 봐야 해요. 명상이라는 것은 그 불상을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기억력으로써 봐야해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