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건혜지에서 주요 수행은 10주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10행을 수행하고 10회향을 수행하는 것이 마음이 자연스럽게 가는 길입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직설직입을 항상 기초로 하시고 , 최고의 자리에서 설법해서 , 10주와 10행과 10회향을 여러겹으로 수행해라 하십니다.

그렇다고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오지도 않는 회향 형식의 행위를 회향이라 해서는 안되는 겸허함을 꼭 갖추길 바랍니다. 10주부터 10행으로 해서 10회향 까지 차근차근하게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늘 사회 다른 분들과 비교하게 될터이지만, 너무 10주도 못했다고 판단되는 수행자가 많을 것입니다. 8지보살 이전에서는 얼마든지 퇴보 가능합니다.

실망하거나 욕할 필요없이 자신의 수행을 잘 해나가시길 기원합니다.

수행이 10주의 단계에 까지 왔다면 욕계정을 지나고 있을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 부터는 평소에 공성에 머무르는 시간이 좀 더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작은 주관과 객관이 분리되어 있습니다. 점점 더 수행해가면 주객이 사라져가는 경험치를 확보하게 되리라 봅니다.

 

이 마음으로 가운데[中; 乾慧觀心中]에서 가운데[中; 中道直觀]로 흘러 들어가면, 원만하고 미묘한 경지가 환하게 열려서, 진실하고 미묘하고 원만한 경계로부터 더욱 진실하고 미묘한 경계가 발생하여 미묘한 믿음이 영원히 머물러서, 일체의 망상이 남김없이 멸하여 다한 가운데, 중도가 순수하고 진실한 자리를 신심주(信心住)라고 한다.

미묘한 경지가 일단 열리고,
여기서,,,
더욱 진실하고 미묘한 경계로 가서,,
미묘한 믿음이 영원히 머무는 자리.

그러면 삶과 죽음의 근원적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믿음이란 어떤 것일까요. 대승기신론에서는 大乘의 큰 믿음을 말합니다. 나의 고통뿐 아니라 남[일체중생, 사회, 인류, 자연환경]의 고통까지 껴안는 것이 대승의 믿음입니다. 믿음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으니 信仰과 信心입니다. 신앙의 믿음이란 불보살(佛菩薩)과 선지식(善知識)에 대해 믿음을 發하는 것이고, 신심의 믿음이란 자기 안에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는 부처의 씨앗[佛性]을 믿는 것입니다. 수행에는 이 두 가지 믿음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진실한 믿음이 환하게 밝아서 일체를 원만하게 통달하여, 5음(陰)과 12처(處)와 18계(界)의 장애를 받지 않으며, 이와 같이 나아가 과거와 미래의 한량없는 겁 동안 몸을 버리고 몸을 받은 일체 습기가 다 앞에 나타나서, 이 선남자가 다 잘 기억하여 잃거나 잊지 않는 자리를 염심주(念心住)라고 한다.

일체를 원만하게 통달하여,,

5음 : 5온을 5음(五陰), 5중(五衆) 또는 5취(五聚)라고도 한다.

12처: 12처(十二處)는 불교의 여러 일체법 분류체계 또는 분석방식 중 하나로, 존재 전체를 안처(眼處) · 이처(耳處) · 비처(鼻處) · 설처(舌處) · 신처(身處) · 의처(意處)의 6근(六根) · 6내처(六內處) 또는 6내입처(六內入處)와 색처(色處) · 성처(聲處) · 향처(香處) · 미처(味處) · 촉처(觸處) · 법처(法處)의 6경(六境) · 6외처(六外處) 또는 6외입처(六外入處)[주해 1]의 총 12가지 처(處)로 분류 또는 분석하는 법체계이다

18계: 18계(十八界, 산스크리트어: astādaśa dhātavah,영어: Eighteen Dhātus)는 불교의 여러 일체법 분류체계 또는 분석방식 중 하나로, 존재 전체를 안계(眼界) · 이계(耳界) · 비계(鼻界) · 설계(舌界) · 신계(身界) · 의계(意界)의 6근(六根) 또는 6소의(六所依)와 색계(色界) · 성계(聲界) · 향계(香界) · 미계(味界) · 촉계(觸界) · 법계(法界)의 6경(六境) 또는 6경계(六境界)와 안식계(眼識界) · 이식계(耳識界) · 비식계(鼻識界) · 설식계(舌識界) · 신식계(身識界) · 의식계(意識界)의 6식(六識) 또는 6능의(六能依)의 총 18가지 계(界)로 분류 또는 분석하는 법체계이다.

5온, 6처, 18계를 두루 살펴서, 수천수억만생의 윤회의 기간동안 쌓은 습기를 살피는 단계입니다.

미묘하고 원만한 경계가 순수하고 진실하여 진실한 정기가 변화를 일으켜, 시작 없는 겁의 습기가 하나로 통하여 정교하게 밝아서, 오직 정교한 밝음이 진실한 청정으로 향하여 나아가는 자리를 정진심(精進心)이라고 한다.

진실한 정기가 나와서,,
정교한 밝음이 나오고,,
진실한 청정으로 진행.

마음의 정진이 앞에 나타나서 순전히 지혜만 작용하는 자리를 혜심주(慧心住)라고 하며,

정진 후 지혜만 작용하는 자리.

지혜의 밝음을 그대로 유지해서 두루 고요하고 맑은 가운데 고요하고 미묘함이 항상 엉기는 자리를 정심주(定心住)라고 하며,

지혜 후에
두루
고요
맑음
미묘함이 항상 엉김 : 항상에 강조하고 엉김에 강조해야 합니다.

선정의 빛이 밝음을 일으키고 밝은 성품이 깊이 들어가서 오직 나아가기만 하고 물러나지 않는 자리를 불퇴심(不退心)이라고 한다.

선정의 빛이 밝음을 일으키고 : 밝음을 일으킨다는 것은 마음의 빛이 선정에 의해 일으켜지는 것이므로 불퇴심에 갈려면 선정을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품이 깊이들어가서

밝음이 물러나지 않음

마음의 정진이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여 잃지 않고 시방 여래의기분(氣分)과 어울려 닿는 자리를 호법심(護法心)이라고 한다.

안정하여 여래의 기분과 닿는 자리.

깨달음의 밝음을 보호하여 유지하고 묘한 힘으로 부처님의 자비한 빛을 돌이켜서, 부처님을 향하여 편안히 머무는 능력이, 마치 두 거울의 광명이 마주하여 그 가운데 묘한 그림자가 겹겹이 서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자리를 회향심(迴向心)이라고 하느니라.

마음의 빛을 은밀히 회향하여 부처님의 변함없이 엉긴 더없이 묘한 맑음을 얻고 무위(無爲)의 경지에 편안히 머물러 잃지 않는 자리를 계심주(戒心住)라고 한다.

계(戒)에 자재하게 머물러 시방을 유행하면서 소원 따라 가는 자리를 원심주(願心住)라고 한다.

아난아, 이 선남자가 진실한 방편으로 이 열 가지 믿는 마음을 일으켜서 마음의 정기가 빛을 발하여 열 가지 작용을 밟아 들어가서 원만하게 한 마음이 된 자리를 발심주(發心住)라고 한다.


마음 가운데서 밝음을 일으킴이 마치 깨끗한 유리 안에 정교한 황금이 나타나듯, 앞의 묘한 마음으로 밟아서 경지[地]를 다져 성취한 자리를 치지주(治地住)라고 한다.


마음과 경지가 서로 통하여 알고 함께 명료해져서 시방을 자유롭게 다녀도 막히거나 걸림이 없는 자리를 수행주(修行住)라고 한다.


수행이 부처님과 동일하여 부처님의 기분(氣分)을 받음이 마치 중음신(中陰身)이 스스로 부모를 찾을 때처럼, 은밀한 신호[陰信]가 가만히 통하여 여래의 종성(種姓)에 들어가는 자리를 생귀주(生貴住)라고 한다.


이미 도의 태(胎)에 노닐며 직접 깨달음의 후사[覺胤]를 받듦이, 마치 태를 이미 이루고 사람의 모양을 모자람 없이 갖춘 것과 같은 자리를 방편구족주(方便具足住)라고 하며, 용모도 부처님 같고 마음상태도 부처님과 동일한 자리를 정심주(正心住)라고 하며, 몸과 마음을 함께 성취하여 날마다 더욱 자라나는 자리를 불퇴주(不退住)라고 하며, 열 가지 몸[十身]의 영묘한 모양을 일시에 다 갖춘 자리를 동진주(童眞住)라고 한다.


형상을 이루고 태에서 나와 친히 불자(佛子)가 된 자리를 법왕자주(法王子住)라고 하며, 성인(成人)을 표함이 마치 대왕이 나라의 일들을 태자에게 나눠 맡기려고 장성한 찰리왕세자(刹利王世子)를 위하여 관정식(灌頂式)을 행함과 같은 자리를 관정주(灌頂住)라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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