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해일륜 - 인과
작성자
mysupper@naver.com
작성일
2025-05-27 10:32
조회
6
https://kabc.dongguk.edu/m/content/view?itemId=ABC_BC&cate=upSeoji&depth=3&upPath=A&dataId=ABC_BC_Y0007_0001_R_001
제19. 고와 낙이 오직 마음으로 된 것(苦樂唯心)
- 객이 묻기를,
“일체 고苦와 낙樂을 식識이 짓는다고 말하지만, 나는 믿지 않습니다.”
용성이 말하기를,
“소견이 적으면 의심이 많다고 하더니 그대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내가 비유로 말할 것이다. 설산雪山에 비니초毘尼草를 먹은 소의 젖을 가져다가 여러 가지 적당한 약을 화합하여 환약을 지으면 그 젖이 좋은 약의 효능을 가져서 사람의 몸을 윤택하게 하는데, 선을 닦은 업이 식識을 잘 도와주어 내생에 좋은 과보果報를 받게 하는 것도 이와 같은 것이다.
젖은 몸에 비유하고, 여러 가지 좋은 약으로 화합한 것은 모든 선업을 닦는 데 비유하며, 그 약을 먹으면 몸이 윤택한 것은 식이 선업에 훈습熏習을 받아 복과福果를 얻는 데 비유한다. 또 그 비니초를 먹은 소젖에 약을 화합하여 먹는 법을 모르고 적당치 못한 약을 화합하여 먹으면 도리어 해를 보는 것이다. 약이 비록 눈도 코도 귀도 입도 없고 모든 지각知覺도 없지만 사람의 몸을 도와주기도 하고 도리어 손해를 입히기도 하는데, 업의 선악으로 선도와 악도에 몸을 받아 태어나는(受生) 것도 다 이와 같은 것이다.
대체로 우리의 아는 것(識)이 업력業力을 따라 변하는 것이 불가사의不可思議이다. 아는 것은 눈과 귀와 코와 입도 없지만, 꿈 가운데에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아 깨달아 알며, 중음신中陰身까지라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아 깨달아 아는 것이 분명하다. 십선十善을 닦는 자는 욕계육천欲界六天에 몸을 받아 태어나고(受生), 사선팔정四禪八定을 닦는 자는 색계십팔천色界十八天에 몸을 받아 태어나며, 사공정四空定을 닦는 자는 사공천四空天에 몸을 받아 태어나는데, 아는 것(識)이 짓는 업을 따라 윤회하는 것이 분명하다.”
객이 묻기를,
“대각大覺의 진리가 선을 지어 천당에 가자는 목적인가요?”
용성이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일체 유정동물一切有情動物의 아는 것(識)이 다 업력에 부림을 당하여 경계境界를 따라서 천당天堂, 지옥地獄에 정처 없이 윤회하지만, 대각의 진리를 깨친 자는 망령되이 아는 식정識情이 단박에 비고, 참으로 밝은 성품이 청정하여 탕탕무위蕩蕩無爲하는데, 어찌 천당 가기를 즐겨 하겠는가? 천당의 즐거움(樂)이 좋다 하여도 필경에는 타락하는 것이다.”
객이 묻기를,
“아는 것(識)이 천당에 가는 모양은 어떠한가요?”
용성이 대답하기를,
“흐린 물이 가라앉으면 맑은 것은 위로 올라와 뜨는 것과 같이, 혼탁한 정욕이 가라앉으면 맑은 생각이 위로 떠서 천당에 갈 때에 자기의 아는 것이 산 사람과 같이 신육수족身肉手足이 완전함을 보는 것이 마치 꿈 가운데 사람과 같은 것이다.
아는 것(識)의 보는 것이 천궁天宮에 한량없이 좋은 장엄을 보고 천당에 몸을 받아 태어나니(受生), 이 아는 것은 자기의 법계法界에 의탁하여 미묘하게 보는 것이고, 육안肉眼을 의탁하여 보는 것이 아니다. 이 아는 것이 미묘微妙하게 보는 것은 천궁에 즐거움을 보고 순식간에 저곳에 왕생往生하는 것이다.”
객이 묻기를,
“아는 것은 형상이 없는데 어찌 삼계제취三界諸趣에 큰 몸과 작은 몸을 받습니까?”
용성이 말하기를,
“바람이 형체가 없지만, 혹 산악山岳을 요동시키며 대해에 파도를 일으키니, 아는 것이 형상이 없지만 그 힘이 맹렬한 것도 이와 같다. 모기(蚊螟)의 몸을 받으면 제가 받는 것만큼 작용하여 쓰고, 큰 사자의 몸을 받으면 그만큼 작용하여 쓰는 것이니 참으로 미묘하다. 이 아는 것이 크다고 하면 한이 없이 크고, 작다고 하면 미진微塵 속에도 차지 않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밝은 등불이 저 집의 작고 큰 것을 따라 광명이 가득해지는 것과 같이, 아는 것도 모든 업력을 따라 형형색색이 같지 아니하여, 크고 작은 몸을 운전하여 가게 되는 것이 이와 같다.
우리의 아는 것이 다 짓고 받는 것이고, 상재上宰나 모든 귀신이 주고받는 것이 아닌 것이다. 비유하자면 넓은 벌판에서 목마른 사람이 단물을 만나는 것도 누가 주는 것이 아니고, 물을 만나지 못하는 것도 누가 막는 것이 아니다. 각각 업력業力을 따라 고와 낙을 받는 것도 이와 같은 것이다.
만물의 모든 종자가 땅을 인하여 움이 트지만 물로써 윤택하며, 태양의 더운 기운을 말미암아 점점 익는데 그 빛이 점점 달라지는 것과 같이, 우리의 몸이 복업福業 지음을 말미암아 자연히 재산이 풍부하고, 금은백옥이 창고에 가득하여 모든 복락을 받는 것도 이와 같은 것이다.
그대가 세상 사람을 보라. 날이 밝도록 밤이 새도록 천하의 민중民衆들이 부귀를 꿈꾸어 돈과 재물(錢財)을 구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아니하는데 그 원인이 아마도 반드시(想必) 있을 것이다. 아무리 지혜가 있고 똑똑하여 잘난 사람도 돈과 재물 앞에서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또 그대가 보아라. 세상에 어떤 사람은 한번 남과 같이 살아 보기를 결심하고, 남에게 고용을 당해 겨우 살게 됨에도 곧 죽어 버리는 자도 있으며, 또 어떤 사람은 험악한 음식을 먹다가 좋은 음식이 생기면 복통이 나서 그 음식을 먹지 못하니, 속담에 ‘복이 없는 자는 계란도 유골有骨이라’고 하는 말이 헛되지 않은 것이다.”
객이 묻기를,
“그러면 복만 있으면 놀고먹어도 무방한가요?”
용성이 말하기를,
“그대가 어찌 그렇게 미련한 말을 하는가? 금년 농사를 지어 놓고 파먹기만 하고 다시 농사를 짓지 아니하면, 내년부터는 한 낱의 곡식도 먹을 것이 없을 것은 정한 이치가 아닌가?”
객이 묻기를,
“그러면 어떻게 해야 복이 되는 것입니까?”
용성이 말하기를,
“복을 짓지 못할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부모에게 효순하고 사장에게 경순하며, 형제와 우애하여 가족과 화합하며, 거처를 정결히 하여 힘의 대소를 따라 항상 공익을 행하고 사욕을 멀리하며, 대각의 진리를 천하의 대중에게 선전하여 미신을 타파하고 정도로 행하게 하며,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보거든 내가 잘되는 것과 같이 즐거워하며, 대각성전에 대각께 공양을 올리거든(聖供) 천하대중과 일체 유정동물이 다 삼계고해를 해탈하고, 낱낱이 대각성인이 되기를 원할 것이며, 가난과 질병(貧病)을 구제하여 줄 것이니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닦으면 복이 되는 것이다.”
객이 말하기를,
“선을 쌓은 집은 반드시 자손에게 경사가 오는 것이고, 악을 쌓은 집은 반드시 자손에게 재앙이 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로 본다면, 사람의 집이 잘되고 못되는 것은 선령先靈의 음덕이 자손에게 미치는 것입니다.”
용성이 말하기를,
“그대가 보라. 고수瞽瞍는 완전한 필부이어서 선을 지은 것이 없으니 반드시 자손에게 재앙과 불행(殃禍)이 있을 것인데도 어찌 순舜임금과 같은 성자聖子를 낳았으며, 요堯임금은 성인이어서 반드시 자손에게 경사가 있을 것인데도 어찌 불초자 단주丹朱를 낳았으며, 또 순임금은 반드시 자손에게 경사가 있을 것인데도 어찌 불초자 상균商均을 낳았으며, 공자孔子는 성인이어서 항상 경사만 있을 것인데도 어찌 진陳나라, 채蔡나라 사이에서 칠일의 난을 만나 굶주린 고통을 당하였겠는가?18) 이와 같은 일을 천하고금에 미루어 보면 동적강銅赤江(한강) 모래 수효와 같아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객이 묻기를,
“선근을 닦은 자가 잘된다는 말도 믿을 수 없고, 악을 지은 자가 잘못된다는 말도 믿을 수 없습니다. 어찌 그런 것인가요? 과거는 물론하고 현재에 내가 보는 것에 악한 사람은 당연히 망할 것인데 점점 흥왕하고, 착한 사람은 잘될 것인데도 점점 망하여 가니, 그 까닭이 어디에 있습니까?”
용성이 말하기를,
“그대가 인과라는 말을 살피지 못하는구나. 인因이라는 말은 시초를 말한 것이고, 과果라는 것은 마침을 말한 것이다. 인이라는 것은 봄에 농사를 짓는 것과 같고, 과라는 것은 가을에 곡식을 거두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이치를 알지 못하고 횡설수설橫說竪說하는 것이 마치 봄에 추수하는 것과 같다. 봄부터 칠팔 개월을 노력하여야 추수하는 것과 같이 전생에 지은 인因으로 금생에 결과를 얻는 것이다. 혹 금생에 업을 지어 금생에 보를 받는 자도 있고, 혹 삼생 후에 받는 자도 있으며, 인을 지을 때에 곧 과果 받는 자도 있으니, 업을 짓고 복 받는 차별이 천차만별이어서 어찌 한가지로 결정하여 말할 것인가?
혹 초반에 선심을 닦다가 중반에 악을 짓는 자도 있으며, 혹 중반에 선을 닦다가 후반에 악을 짓는 자도 있으며, 혹 초반에 악을 짓다가 후반에 선을 닦는 자도 있으며, 혹 순전히 선업을 닦는 자도 있으며, 혹 선이 수승(勝)하고 악이 하열(劣)한 자도 있으며, 혹 악이 수승하고 선이 하열한 자도 있으며, 혹 선과 악을 서로 반반(相半) 정도 짓는 자도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因 지음이 다르기 때문에 그 과보를 받는 것도 일정하지 못한 것이다.
요순의 아들이 어질지 못한 것과 공자가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곤란을 받는 것과, 안연顏淵이 요절(夭死)한 것과 자건子騫이 악모惡母를 만나는 것이 다 전생에 지은 업연業緣으로 된 것이니, 내가 짓고 내가 받는 것이고, 선령先靈에서 지은 음덕을 자손에게 전통적傳統的으로 받는 것이 아닌 것이다.”
객이 묻기를,
“그대의 말이 옳은 듯하지만, 고시대古時代에 어떤 사람이 역률逆律을 범하면 삼족이 멸하고, 어떤 사람이 국가에 대공을 이루면 자손에게 경사가 미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덕을 쌓은 집안(積善之家)에는 반드시 남은 복이 있고(必有餘慶), 악한 것을 쌓은 집안(積惡之家)에는 반드시 남은 재앙이 있다(必有餘殃)는 것이 아닌가요?”
용성이 말하기를,
“동업同業과 별업別業의 차별을 그대는 어찌 알지 못하는가? 국가와 백성의 업이 같기 때문에 한 국토에 나고, 부모와 자녀가 업이 같기 때문에 한집에 동거하는 것이다. 날짐승과 길짐승, 물고기와 자라, 곤충 등의 중생(乃至禽獸漁鱉昆蟲之物)까지라도 각각 저들의 부속部屬이 있어 구별이 다르다. 그러하므로 국가에 난難이 있으면 백성이 도탄에 빠져들고 국가를 잘 다스리면 백성이 편안하며, 부모가 경사가 있으면 자손이 환희하고 부모가 병이 있으면 자손이 근심하는데, 이것은 다 숙세宿世의 업연과 동업同業으로 된 것이다.
또 별업別業이라 하는 것은 혹 한 나라가 소란한데 일방一方은 편안하며, 혹 한곳에서 몹쓸 재앙을 당하였는데 다른 곳은 무사하며, 혹 열 사람이 사지에 들어갔는데 한두 사람이 살아오기도 하니 이것이 다 동업 가운데 별업인 것이다. 또 한 가족 가운데도 형은 부귀하고 동생은 빈천하며, 또 노비권속과 우마육축이 한집에서 거주해도 귀천이 각각 다른 것이다. 이것이 다 동업 가운데 별업이거늘 세상 사람은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부귀를 받으면 아만심이 높아 일체 사람을 경멸히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지은 복이 다하면, 다시 빈천의 과보를 받을 것을 어찌 알겠는가?”
객이 묻기를,
“이것이 다 우리의 아는 것(識)으로 지은 것이라 하니, 그 모습을 잘 그려 내어 보여 주시오.”
용성이 말하기를,
“비유하자면 과실 종자를 땅에 던져두면 과실이 나무 끝에서 맺지만, 그 과실나무 속으로부터 가지로 나오고, 가지 속으로부터 가지 끝으로 나와서 달린 것이 아니다. 나무를 분석하여 보아도 그 종자를 보지 못하는데, 이것은 사람이 그 종자를 가져다가 나무 끝에 둔 것도 아니며, 나무뿌리가 왕성하여 견고하나 그 뿌리에서 종자를 찾아보아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와 같아서 몸은 선악업이 다 몸을 의지하여 있는데, 저 몸을 해부하여 찾아보아도 업은 선악이 갖추어 있지만 저 업이 흔적이 없으며, 또 한 점 익어 가는 상이 없는 것이다.
또 비유하자면 사람의 그림자는 형체가 있고 질애質礙19)가 없어서 붙잡을 수가 없으며 얽어맬 수 없지만 사람의 동작을 따라 운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림자가 몸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볼 수 없으니 업도 그러하여, 몸과 업이 있지만 저 업을 보지 못하며, 얽어맬 수 없으나 몸을 여의지는 못하는 것이다. 또 비유하자면 좋은 선악이 사람의 몸을 도와 일체 병고를 제거하고 기력이 강건하며, 몸이 윤택하며 낯빛이 빛나고 윤택(光潤)하지만 그 약의 효능은 형상이 없어 보지 못하는 것과 같이, 업도 그러하여 형상이 없지만 사람의 몸을 도와주는 것도 이와 같은 것이다.
선업이 도와주는 것은 의복, 음식과 모든 재산이 풍족하며 수족手足이 단정하고 용모가 수승殊勝하며, 궁전과 누각이 화려하고, 금은칠보가 가득하여 안녕과 쾌락을 받는 것이고, 악업이 응하는 것은 지옥과 아귀와 축생에 몸을 받아 태어나며(受生), 비록 인간계에 사람이 될지라도 빈궁하고 하천하며, 제근諸根이 구족하지 못하여 모든 고통 받는 형상을 말로 형용할 수 없다. 또 비유하자면 밝은 거울이 사람 얼굴의 곱고 추함을 비추어 주지만 거울 가운데 나타나는 얼굴의 바탕이 없어서 붙잡을 수 없으니, 아는 식정識情도 그러하여 선악에 훈습熏習함을 받아 선도 악도 나타나지만, 그 업식業識을 붙잡을 수 없는 것이다.”
객이 묻기를,
“한 점 밝게 아는 것(識)이 큰 몸과 작은 몸을 가져 운전하는데, 그 이치가 어떠한 것인가요?”
용성이 말하기를,
“아는 것은 대소를 정할 수 없는 것이니, 큰 몸을 가지면 크게 작용作用하고, 작은 몸을 가지면 작게 작용하는 것이다. 곤충이 아는 것은 적은 듯하지만, 작은 몸을 버리고 태산과 같은 몸을 받으면 그 작용이 광대한 것이다. 비유하자면 사냥하는 사람이 화살에 독한 약을 발라 큰 코끼리를 쏘는데 그 화살의 독기가 혈관血貫을 따라 전신에 흘러 들어가서(流注) 코끼리를 살해한다. 코끼리와 화살의 독약을 서로 비교하면, 대소가 천양지간天壤之間이다. 그러나 그 코끼리가 죽은 뒤에는 독기가 옮아가는 것과 같아서 우리의 아는 것이 몸을 버리고 다시 큰 몸을 받으며, 금생에 보고 듣는 모든 경계를 버리고, 업력을 따라 옮아가는 것도 이와 같은 것이다.
또다시 비유하자면 난타용왕難陀龍王과 오파난타용왕烏波難陀龍王이 있는데, 그 용의 몸 길이가 수미산須彌山을 세 번 둘러서(三匝) 감을 만큼 길며, 그 용이 한번 크게 숨을 쉬면, 수미산이 진동하고 대해의 바닷물이 변하여 독기를 이룬다. 이 용왕의 몸이 장대長大하고 기력이 웅장雄莊하지만, 그 아는 것(識)은 조그마한 모기 깔다귀의 아는 것과 추호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그 용왕이 그와 같이 굉장하지만 독한 미균微囷이 용왕의 입으로 들어가면 용이 곧 죽는 것이다.
이 적은 미균의 독기가 저 용왕을 죽일 수도 있다. 우리의 아는 것이 비록 적은 듯하지만, 가령 지구地球 별만 한 몸을 받으면 그 몸을 마음대로 운전하여 굉장히 작용하며, 모기만 한 몸을 받으면 그만큼 운전하는 것이다.
또 비유하자면 소나무 종자가 비록 작으나 아름드리 큰 나무(連抱之木)가 그 씨앗으로부터 나오니 그 종자를 나무에 비교한다면 대소가 현격하게 다르지만(懸殊), 그러나 그 종자 가운데 소나무를 찾아보아도 없는 것이며, 또 종자를 여의면 소나무가 없는 것이다. 이와 같아서 한 점 밝은 식識이 큰 몸을 낼 수 있는 것도 이와 같은 것이다.”
객이 묻기를,
“아는 식이 견고하여 파괴할 수 없는데, 어찌 속히 썩어지는 몸 안에 머물러 있나요?”
용성이 대답하기를,
“비유하자면 빈궁한 사람이 여의주如意珠를 얻었는데, 보배의 힘으로 금은전보를 얻어 궁전이 화려하고 꽃과 열매가 무성하여 온갖 복락을 받다가, 그 사람이 여의주如意珠를 유실遺失함에 부귀가 다 일장춘몽一場春夢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아는 식도 다 이와 같아서 파괴할 수 없이 견고하지만, 그 아는 것에서 생겨 나온 몸은 속히 없어지는 것이다.”
객이 묻기를,
“지극히 부드럽고 오묘한 아는 식이 어찌 탁하고 굳은 색신色身 가운데 뚜렷이 들어갑니까?”
용성이 말하기를,
“물(水)의 본체本體가 지극히 부드럽지만 빠르게 흐르는 물이 흙과 바위(土石)를 뚫고 내려간다. 우리의 아는 것(識)도 이와 같아서 지극히 부드럽고 오묘하여 견고하고 강한 사대四大를 뚫고 들어가 업보業報를 받다가 문득 버리고 가는 것이다.”
객이 묻기를,
“중생이 목숨을 마칠 때 천당에 나기를 원하는 것이 좋을까요, 대각성인의 나라에 나는 것이 좋을까요?”
용성이 대답하기를,
“천당이 아무리 좋다 하여도 삼계를 면치 못하는 것이니, 복이 다하면 필경에 타락하는 것이다. 대각성인의 법을 닦는 자는 상근기는 바로 도를 깨쳐서 가고 올 것이 없으니 원각이 널리 비추며, 적멸이 둘이 없어서 저 가운데에는 천당만 아니라 일체 모든 대각성인의 국토가 허공에 꽃이 어지러이 일어나고 어지러이 멸하는 것과 같아서, 서로 상즉(卽)한 것도 아니고, 여읜 것도 아니니 일체 유정동물이 다 본래 깨친 것이다.
어찌하여 그러한 것인가? 원각자성이 본래 청정하여 세계와 허공을 삼키어서 불생불멸不生不滅하며, 무거무래無去無來하여 삼계고해三界苦海를 여의어서 해탈하는 것이다. 혹 하근기의 중생이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옴마니반메훔’)이나 무량수각無量壽覺(‘아미타불’)을 일심으로 생각하여 항상 지송하면, 목숨을 마칠 때에 마음이 뒤바뀌지(顚倒) 않고 곧 대각성인의 화신국토에 왕생하는데, 동적강銅赤江(한강) 모래 수와 같은 천당의 즐거움을 받을지라도 대각성인의 국토의 하품下品만 못할 뿐 아니라, 천당의 즐거움은 복이 다하면 곧 타락하여 다시 고통의 바다로 들어가는 것이다.”
객이 묻기를,
“지옥에 가는 모양은 어떠합니까?”
용성이 말하기를,
“지옥에 가는 중생은 업력이 무거우므로 목숨을 마칠 때에 생각하기를 ‘내가 이제 죽는 것이구나. 부모 친척과 사랑하는 벗과 영원히 이별하니 나의 근심을 어찌하리오?’라고 한다. 그 업력을 나타내는 것이 다른 것을 한가지로 말할 수 없다.
무릇 지옥에 들어가는 자는 발은 위로 향하고 머리는 아래로 꺼꾸러지는 것이니, 그 아는 것(識)이 한곳을 보니 순전히 피(血)바다가 있는 곳이다. 아는 것이 업력으로써 피를 마시고자 하여 급히 따라가서 피에 맛을 들여 애착하기 때문에 곧 지옥에 나는 것이니, 부패한 썩은 물에 더러운 인력因力으로써 아는 것이 그 가운데에 의탁依托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무슨 물건이든지 썩어서 더럽고 냄새가 나는 곳에 벌레가 생겨나는 것과 같아서, 아는 것이 더러운 피바다로 인하여 지옥에 들어가는 것도 이와 같은 것이다.”
객이 묻기를,
“지옥 중생은 그 모양과 빛이 어떠합니까?”
용성이 말하기를,
“피를 애착하여 지옥에 나는 중생은 몸이 핏빛과 같고, 화탕지옥火湯地獄에 나는 중생은 몸이 검은 구름 빛과 같으며, 유탕하乳湯河지옥에 나는 중생은 몸이 잡색으로 아롱아롱한 빛깔을 지녔으며, 그 몸은 매우 부드러워 매우 귀한(極貴) 어린아이의 몸과 같으며, 그 몸이 장대하기는 8주肘가 넘고,20) 수염과 털이 땅에 끌리며, 수족과 얼굴 생김새가 온전치 못하다.”
객이 묻기를,
“음식은 무엇을 먹는가요?”
용성이 말하기를,
“지옥 중생이 먹는 것은 조금도 즐거울 것이 없나니, 구리쇳물이 배 속에 들어감에 골절이 다 불타 버리며, 업력으로 하여금 하룻밤 하룻낮에 만 번 죽고 만 번 살아나는 그 무서운 고통을 어찌 입으로 말하겠는가? 대각께서 다 자세히 말씀하셨으니 내가 더 말할 것이 없다.
대체로 모든 것이 우리의 아는 것(識)으로 지은 것이고, 누가 주는 것이 아니다. 항상 우리의 아는 것이 모든 것에 물들임(染着)으로 인하여, 망정妄情을 일으켜서 정들임(愛着)을 쌓아서 쉬지 않으면, 사랑의 결과로 없던 사물이 생겨날 수 있다. 그러하므로 그대가 맛있는 음식을 생각하면 입 가운데에서 침이 나오고, 정든 사람을 이별하든지 혹 죽든지 하면 사랑이 지극하여 슬퍼서 통곡하여 눈 가운데에서 눈물이 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는 식이 안에서 활동하여 음기를 쌓기 때문에 눈물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재물을 탐착하면 마음에서 사랑이 생겨나기 때문에 온몸이 광윤光潤하고, 마음이 음욕을 생각하여 연애가 지극(極)하면 남녀의 생식기로 자연히 진액이 나오는 것이다. 이것이 다 우리의 아는 것(識)에서 경계를 반연하여 정욕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니, 애욕망정愛欲妄情이 곧 물이 생겨나는 원인이다. 물의 성질은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니 그 애욕의 자체가 자연히 업을 불러서 아는 것(識)이 생사에 윤회하게 하며, 마음이 번뇌에 쌓이거나 진심이 일어나거나 하면 이것이 불이 일어나는 것이니, 곧 아는 것(識)이 풍도지옥風途地獄과 화탕지옥에 끌려 들어가는 것이다.
사람이 모든 애욕과 번뇌를 놓아 버리고 순일하게 생각이 청정하면, 비유하건대 맑은 기운은 위로 뜨는 것과 같아서 아는 것(識)이 위로 올라 천상에 나는 것이다. 만일 이 가운데에서 복덕과 지혜를 닦으며 청정한 원력을 세우면, 자연히 마음이 열리어서 대각성인을 친견하고 안락국토安樂國土에 왕생하는 것이다.
만일 탁한 정이 적고 맑은 생각이 많으면, 곧 날아다니는 신선과 대력귀왕大力鬼王과 날아다니는 야차夜叉와 땅에 다니는 나찰羅刹이 되어 사천왕천四天王天에 돌아다니게 되어 걸림이 없는 것이다. 그 가운데에 도착한 원력과 착한 마음이 있어 대각의 정법正法을 보호하며, 금계禁戒를 가지는 사람과 마음 닦는 사람을 보호하는 자는, 친히 대각의 좌하座下에 머물러 태어난다.
탁한 뜻과 맑은 생각이 골고루 평등(均平)하면 위로 갈 수도 없고 아래로 떨어질 수도 없어 인간에 몸을 받아 태어나는데(受生), 생각이 맑은 자는 총명하고 뜻이 탁한 자는 우둔한 것이다. 탁한 뜻이 많고 맑은 생각이 적으면 축생취畜生趣에 떨어지되, 그 가운데도 정情이 무거운(重) 자는 털 있는 짐승이 되고 정이 가벼운 자는 날아다니는 짐승이 되는 것이다.
탁한 정신은 십분의 칠이나 되고 맑은 생각은 십분의 삼이나 되면, 아는 것(識)이 아래로 끌리어 이 세계 아래 물 바퀴(水輪)와 불 바퀴(火輪) 둘 사이에 떨어져 모진 불기운을 받아서 아귀餓鬼가 되어 항상 불(火)을 탐하게 되며, 물이 불로 변하여 도리어 해롭게 하기 때문에 그 주리고 배고픈 딱한 형편(情狀)은 말할 수 없어서 백천겁百千劫을 지나가지만 쉴 새가 없는 것이다.
또 탁한 뜻이 십분에 구가 되고 맑은 생각이 십분에 일이 되면, 아는 것이 끌리어 바람 바퀴(風輪)와 불 바퀴(火輪) 두 사이에 떨어지지만 죄罪가 가벼우면 유간지옥有間地獄에 떨어지고, 죄가 무거우면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는 것이다.
또 십 분이 온전히 탁하면 아비대지옥阿鼻大地獄에 떨어지는데, 만일 아울러서 대승을 비방하고 금계禁戒를 무너뜨리며, 삿된 법을 설하여 세상을 의혹케 하며, 오역죄와 십중죄(五逆十重)를 짓는 자는 천지天地에 대삼재大三災가 나서 이 세계가 무너질 때에 다른 세계 아비지옥으로 옮겨 가는 것이다. 대각께서 말씀하신 지옥의 행상行相이 자세하고 분명함이 많이 있으나 조금만 가려 뽑아 간략히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