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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선정을 모르는 이유
위의 글들에서 선정이란 어떤 것인지 감 잡았으리라 봅니다. (십우도의 소꼬리잡기, 마음과 마음의 구조 및 기능과 분류) 선정이 어떤 것을 기초로 해서 연마되는 것인지도 감잡았으리라 생각합니다.(사띠파타나로 시작해서 선정의체크리스트까지) 선정이 어떤 단계를 통과하는지 감잡았으리라 생각합니다.(구주심이나 마음의 구조등) 올바른 선정이란 어떤 것인지도 감잡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자비심과 선정의 체크리스트)
그런데도 모르겟죠?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생활속에서 하질 않아서 그래요. 그래서 예를 들어볼려구요. 예를 들어서 이렇게 하는 거구나 하는걸 알려드리려 합니다.
생활속의 선정
아침 9시입니다.
오늘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어제 생각해두었던 차량 정기검사 메시지가 기억나네요.
주섬주섬 옷을 입고 아침 생각이 나서 밥을 먹을까 했더니 그렇게 배고프지도 않고 귀찮네요. 아침은 생략하기도 하고 갓다와서 먹기로 했습니다.
옷입고 신발신고 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타러갑니다.
날씨가 좋군요. 내 몸과 마음을 보니 몽롱한데 선선한 날씨로 인해 몸이 가볍게 보이는군요. 마음도 가벼워지는 듯 합니다. 몽롱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피로도는 심하지 않고 몸은 유연하고 마음도 유연한 것을 압니다.
주위의 여러가지 복잡한 인연들로 인해 사람들이 아우성치는 것이 내 마음에 반영되고 내 마음이 요동을 치는군요. 내 마음이 분노한 마음 미워하는 마음 이놈들을 어떻게 할까 대책을 세울까 대책을 어디까지 세울까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 등의 잡다한 마음의 지꺼기가 계속 이어지는 군요. 그래봣자 내 마음이 요동치는 것일뿐 해결이 아님을 꿰뚫어보자 마자 그 마음이 순식간에 없어집니다. 역시 내 마음이 대상이 없어지니 고요해지는 기계적인 반응을 합니다. 마음이 무상한거죠. 무상한 것임을 아는 순간 평정이 오고 다시 세상이 보입니다. 아름다운 아침이군요.
차에 가서 차문 열고 시동걸고 하는 와중에 내 마음이 차,차문,시동등으로 계속 대상을 바꿉니다. 차 몰고 슬슬가는데 주위 사람들이 차 가는 길에서 왓다갓다 하는 것이 보이는 군요.
차에 치이면 안되니, 슬슬 차몰아서 차를 모는 몸과 마음에 집중해서 사고가 나지 않도록 합니다.
도착하니 검사소 대기줄에 차를 세워두고 접수처로 갑니다. 접수처 늙은 아주머니가 접수처에 앉아서 요기를 하고 있네요. 아침을 안먹었나 봅니다. 그 녀가 나로인해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애정을 실어서 접수를 합니다. 그녀가 내 맘속에 들어와서 내 마음이 상을 만드는 것이 느껴지는군요. 배가고프겠구나 바쁜와중에도 허기를 채우는구나 불쌍하구나 등등. 접수와 계산하는 와중에 다 했으니 꺼지라는 그녀의 소리아닌 소리가 내 마음에 반영됩니다. 그녀의 굳고 꽉 막힌 마음이 정말 섬뜩하군요. 그녀가 불쌍합니다.
나와보니 제가 접수한 것을 본 검사실 직원이 벌써 제 차의 검사를 위해 검사실쪽으로 몰고 가는군요.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들의 상념이 또 떠오릅니다. 주위의 여러가지 복잡한 인연들로 인해 사람들이 아우성치는 것이 내 마음에 반영되고 내 마음이 요동을 치는군요. 내 마음이 분노한 마음 미워하는 마음 이놈들을 어떻게 할까 대책을 세울까 대책을 어디까지 세울까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 등의 잡다한 마음의 지꺼기가 계속 이어지는 군요. 그래봣자 내 마음이 요동치는 것일뿐 해결이 아님을 꿰뚫어보자 마자 그 마음이 순식간에 없어집니다. 아무래도 이 일은 뭔가 순서를 정해서 마무리를 지어야 할 듯 하군요. 자꾸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을 보면. 마무리가 안되는 것도 있을 것이고 무상의 마음으로 넘기고 가야할 것들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별로 걱정은 안됩니다. 늘 무상하게 봐 왔으니깐요. 그래도 이대로 두기엔 그 사람들도 찝찝할테니 무상하게 넘길 수 있도록 자비심을 실어서 마무리를 잘 하는 방향으로 해야겠습니다.
검사가 끝나니 검사실 직원이 차량 검사 결과 안내하고 차 가지고 저를 보낼려고 부르는 군요.
현재 아침 10시 반쯤 되었네요.
여전히 아름다운 햇빛과 선선한 바람이 저는 축복하는군요.
집에 다시 왔습니다.
이것저것 처리할 일들이 많습니다. 처리합니다.
12시 20분
이것저것 정리를 하고 앉으니 부처님의 죽음이 어디있는가하는 메시지와 호흡간에 있다는 메시지가 떠오르는군요. 이 메시지는 예전부터 좋아하던 메시지입니다. 호흡간에 죽음이 있고 생존이 동시에 병행하는군요. 그 호흡은 내가 멈출 수도 없고 일부러 호흡하면 숨만 찹니다. 역시 생과 사를 결정하는 내 호흡에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요소가 없군요. 호흡을 보면서 가만히 둡니다. 고요함이 호흡을 보면서 점점 강화되어 갑니다. 고요함속에서 정신이 흐릿해지고 졸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자극을 주면서 호흡속의 무상함과 무아를 봅니다.
호흡의 무상함과 무아를 보면서 묘한 자리가 계속 나옵니다. 입에 단침이 고이고 몸을 유연해지고 마음도 유연해 지네요. 마음은 넓어지고 내가 없으니 너무 가벼워져서 마음이 먼 우주로 날아가기도 합니다. 뭔가 보이는 것도 있지만 생략하겠습니다. 사람들에게 괜한 신비주의의 욕망을 일으킬 위험이 있습니다. 아침에 자꾸 마주했던 내 마음이 세상사와 접한 자리가 씻겨져갑니다. 지나간 자리는 마음속에 씻겨져가서 앞으로도 또 내 마음이 반영하면 잘 처리해야 하겠다고 결심해봅니다.
우리 조상님들이 좋아했던 여백의 미가 새삼스럽군요.
현재 시각 12시 40분. 점심먹으로 가야겠군요.